인지검사
“오늘 며칠이고?”
잠시 검사실에 놔 둔 물건을 가지러 간 나를 엄마는 잽싸게 붙들고 물어본다.
검사자가 다급하게 ‘물어보시면 안돼요’라고 한다.
나도 재빨리 ‘나한테 물어보면 안돼요’라고 했다.
엄마는 병원 가는 차 안에서 ‘오늘이 3월 6일이제?’ 하고 스스로 말했었다. 물론 휴대전화에 기록된 날짜를 보고 확인차 물어본 것이었다. 나는 차안에서 엄마에게 인지검사에 대한 설명을 나름 엄마 눈높이 맞춰서 했다.
“엄마! 오늘 시험을 치러 가는데 시험 잘 칠 수 있겠죠?”
“나 시험치나? 무슨 시험?”
“기억력 시험”
“기억력. 잘 못하는데…”
“못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점수가 잘 나옵니다.”
“응 알았다. 모르면 어떡하지?”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돼요.”
“점수가 잘 나오면 돈 나오나?”
“아니”
“그럼, 점수가 안 나오면 멍청이라 하겠네.”
“응, 멍청이라고 나올 수도 있어.”
사실 나도 인지검사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아마도 치매 증상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검사하는 것 같다.
검사자의 목소리가 검사실 벽을 뚫고 나오는 것 같다. 엄마는 보청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방에서 보호자 검사지를 들고 앉았다.
신경·정신에 관한 보호자 설문서 NPI-Q (보호자 검사지)를 마주하며 엄마의 행동이 치매로 인한 것임을 더 확인하게 된다.
망상: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훔치거나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믿습니까?
엄마는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 냉장고에서 간식을 먹는다고 했다. 자꾸 물건이 없어진다고 했다. 다 떨어져 구멍이 숭숭 난 등밀이용 이태리타월이 없어졌다고 했다. 어느 날은 빨래 삶는 대야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미 버린 지 오래된 물건이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제까지 잘 쓰고 구멍도 안 났는데 왜 그게 없어졌노? 그 청소하는 사람들이 가져갔다”라고 했다.
어느 날은 노치원(주간보호센터)에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가져가 서랍에 넣었다가 끝날 때 주었단다. 자신을 무시하는 게 기분 나빠서 내일은 그 노치원에 안 가고 다른 노치원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럼, 잘 알아보세요.”라고 대답했다.
완고함: 완고하게 다른 이의 도움을 거부합니까?
굳이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겠다고 몇 번씩 이야기하지만, 정작 다리가 불편하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혼자서 버스표를 예매하지도 못한다. 오늘도 5번은 같은 이야기를 시간을 두고 반복했다.
그래도 1년 전까지는 혼자 버스를 태워 보내기도 했었다.
의기양양, 도취감: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이거나 지나치게 행복한 듯 행동합니까?
인지검사를 위해 온 신경과 병원엔 사람이 정말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꼭 명절 때 북적이는 시골 시장 같았다. 두 달 전에 예약했기에 별다른 대기 없이 검사가 진행되었다.
엄마의 입장은 다르다. 내가 주차하고 오는 사이 접수를 했단다. 좀 기다리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오늘 서울 가야 하니 빨리 좀 해달라고 했단다. 검사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그렇게 말해서 빨리 된거라고 좋아했다. 계속 반복해서 내게 말했다.
나는 다 엄마 덕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기억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의사는 그나마 약을 먹어서 진전이 느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언어능력은 조금 향상되었단다. 아마도 주간보호센터에서 많은 사림과 이야기하니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아진 것 같았다.
지난번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의사 선생님께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선생님, 일기를 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셨죠?”
의사 선생도 눈빛이 반짝이더니, “네! 어머니 일기를 쓰면 머리가 좋아져요. 센터 마치고 집에 가시면 오늘 무엇을 했는지 생각나는 걸 몇 줄 쓰시고 주무세요. 잘 쓰셔서 다음에 일기장도 저한테 보여주세요.”
“엄마, 한 줄만 써도 돼요. 오늘부터 일기 써봅시다.”
엄마의 기억력이 달나라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가끔 이 기억력 때문에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늘도 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대답을 해줘도 그때뿐이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쉬엄쉬엄 올라왔다. 엄마는 아침부터 병원 가랴, 친구 만나랴, 어제 주문한 조개도 찾으러 가랴, 서울까지 올라온다고 하루 종일 힘들었다.
운전은 내가 했는데, 엄마가 더 피곤하다. 나는 침대에 뻗어 누운 엄마를 애써 일으켰다.
마침 있던 노란 노트 한 권을 엄마에게 들이밀며 일기를 써야 한다고 했다.
노란 노트 겉표지에는 일기장이라고 쓰고, 그 밑에 엄마의 다짐을 반강제적으로 쓰게 했다. ‘나 ***은 매일 일기를 써서 머리가 좋아질 것이다. 2025년 3월 6일’
노트 첫 페이지를 펼쳐서 날짜를 가르쳐 주며 기록하라고 했다. 엄마는 늘 오늘이 며칠인지 모른다. 다시 날짜를 가르쳐 주었다. 오늘 일기는 무엇을 쓸 거냐 물었다.
‘오늘은 통영에서 서울로 왔다’를 쓸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오늘은 통영에서 우리 작은 딸 은지와 함께 통영에서 서울 우리 작은 딸 집에 왔다’를 쓰셨다.
87세인 우리 엄마에게 ‘우리 작은 딸’이 두 번 들어간다는 잔소리를 놓치지 않고 했다. 나는 엄마의 일기장 앞표지에 작은 나무 화분 스티커를 하나 붙여 드렸다.
엄마의 기억력이 일기 쓰기를 통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마가 혼자서도 꾸준히 일기를 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