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엄마가 있습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촉이었을까?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화장품 방문판매를 했다. 걸핏하면 백수인 아버지를 의지할 수 없었던 엄마는 우리 3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화장품 방문 판매의 길로 뛰어들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텅 비고 휑했다. 엄마는 열심히 일하고 다 늦은 저녁에야 들어올 수 있었다. 피곤했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우리의 저녁을 차려주었다.
자주 체하던 나는 멀쩡히 학교에 갔지만, 오전 시간부터 갑자기 배가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선생님께 허락을 맡고 울면서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아파해야 할 생각을 하니 더 막막하고 서러웠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나를 맞아 주었다. 엄마가 있다! 와~ 엄마다! 나는 아프다고 엉엉 울면서 엄마의 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그 길로 나를 동네에서 마사지 잘하는 할머니에게 데려갔다. 애가 체한 것 같으니 좀 주물러 달라는 것이었다. 어깨의 어떤 부분을 만지는데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다. 울다가 웃다가 몸이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엄마는 나에게 천사였다.
"송대리, 어젯밤에 컴퓨터 전원을 잘 끄고 퇴근했나?"
이른 아침에 갑자기 부장님이 전화했다. 무슨 말씀이시냐 물으니 사무실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컴퓨터 전원은 언제나 잘 끄고 나간다고 하며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탔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페인트회사였다. 불조심은 회사에서 특별히 주의하라고 교육도 많이 시키는 부분이었다. 이른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엄마가 전화했다. "별일 없니?" 놀란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시골에 있는 엄마가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나는 회사에 이런 일이 있어서 급히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엄마랑 통화하고 나니 좀 안심이 되었다.
화재의 전말은 사무실을 옮긴 지 며칠 안된 부장님이 원인이었다. 온풍기와 냉방기를 겸용으로 사용하는 기계였는데, 잘 식히지 않고 전원을 내려 거기서 발화가 된 것이었다. 덕분에 모든 사무실의 문서정리를 다시 해야 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봤다. 주인공 애순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애순의 엄마가 슈퍼맨처럼 나타나 구해주는 내용이 나왔다. 주인공은 어려서 몰랐지만, 나중에 커서 주변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으로 묘사되었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는 슈퍼맨이었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을 때부터 통영의 구석구석을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엄마는 50의 나이에 자전거를 배웠고 화장품을 싣고 시골 구석구석까지 가서 팔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다니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분 전환이 되어 좋았다고 지금도 이야기한다.
"딸아"라고 문자가 오거나 전화가 오면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천리길을 떨어져 있는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휴대전화에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고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아무리 설명해도 엄마는 스스로 하지 못한다. 휴대전화의 손전등은 그다음 날 스스로 꺼졌다. 옆에 있었다면 바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며칠 후에 엄마에게 휴대전화 불빛이 어떻게 꺼졌냐고 물어보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로보트 짱가'같았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라고 시작하는 만화주제가와 같았다. 엄마는 내가 힘들 때, 곤란할 때 나타나 적절한 도움을 주었다. 드라마 주인공의 엄마만큼 우리 엄마도 촉이 좋았다. 엄마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다. 엄마의 사랑은 자식의 도리나 효도보다 훨씬 크고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