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족

예기치 않은 감동

어버이날 특집 편

by 보니

형제들 카톡방이 울린다.

타지키스탄에 도착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버지 폐렴 와서 산소포화도 떨어지고 코에 호흡보조줄 달고 금식하고 안티 들어갈 모양임’

안티? 아! 항생제!! 나 빼고 의료진 출신이라 나도 반쯤 그들의 줄임말을 알아듣는다.

돌발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3주 전에 아버지 면회 때, 올해 몇 살인지 아냐고 물으니 91세라고 당당히 말했다. 사실 만 86세이다.

3년째 침대에만 누워있으니 날짜나 시간, 어릴 적 기억, 젊은 날의 기억이 다 뒤죽박죽인 모양이다. 아버지도 치매증상이 서서히 오는 것 같다.


여전히 폐렴치료 중이라 그런지 이번 면회 때도 살짝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누군가가 기저귀에 숨겨둔 돈을 가져갔다고 했다. 내가 가서 혼내주겠다 하니 다들 안 가져갔다 할 거라 말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물론, 돈은 원래부터 없었다.

면회 중에 간호사가 환자를 체크하러 왔다. 내가 봐도 젊고 이쁜 아가씨였다. 아버지는 이 간호사가 다가오자 손목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니는 일부러 손목을 빼며 손을 닦는 척했다. 이쁜 아가씨가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자 다급하게 부른다. “야!”

나는 기겁을 하며 간호사를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며 따발총 잔소리를 날렸다. 이런 아버지가 내심 부끄러웠다.


다음날 언니네 국숫집에 들러 아버지 면회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말하는 나에게 사촌언니(작은 아버지의 딸)와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9남매 중 셋째다. 형제 중 작은 아버지만 유일하게 아버지와 같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암으로 형제 중 가장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우리 아버지랑 얼굴이 가장 많이 닮아서 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예전에 작은 아버지 살아계실 때, 우리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내가 살아보니까 자식들 위해 기도해 주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엄마를 만나러 왔다.

신경과에서 약을 타야 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내려왔다. ‘돈이 하나도 없다. 교회에 헌금도 못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해결사 같은 마음으로 내려왔다. 물건을 너무 잘 챙겨놓아서 자신도 못 찾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번에도 내가 찾아줘야지!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다 헤집었다. 나도 못 찾겠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았다.


두 달 전부터 일기 쓰기를 시작한 엄마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에는 엄마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하는 일도 없이 이 나이 먹도록 딸내미 시집도 못 보냈다고 적어놓았다. 내가 시집 안 간 것도 엄마의 무능이었다. 매일 같은 일상이라 쓰는 게 똑같아 쓰기 싫다는 엄마에게 이제부터는 감사한 것을 하루에 3개씩 찾아 써보라고 숙제를 드렸다. 의사는 일기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치며 칭찬해 주었다. 엄마는 환한 얼굴로 웃으며 진료실을 나왔다.


잠시 엄마와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있다. 이 순간이 행복하다. 엄마랑 있으니 참 좋다.


혹시 몰라 엄마 머리맡에 있는 성경책의 지퍼를 열어보았다. 엄마는 돈이 생기면 언제나 헌금을 먼저 챙겨 넣는다. 성경책 뒤쪽에서 통장과 현금이 나타났다.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엄마는 신나게 돈을 세고 또 세고 있다. 돈이 얼마인지 자꾸 기억이 안 나나 보다. 동영상으로 어디에 두었는지 찍어두었다. 모르겠다고 하면 이제 동영상을 보낼 것이다. 그나저나 나의 말투와 사투리는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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