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족

나, 이제 고아야

부모라는 존재의 소중함

by 보니


“목사님,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어 그래, 나 이제 고아야”

“몇 살이셨어요?”

“94살”

“어디에 걸렸어요?”

“응? 병 걸린 게 아니라 나이가 많아서 이제 천국에 가셨어. “

“….”


우리 목사님의 어머님은 94세의 나이에 천국으로 가셨다. 엊그제 장례를 마쳤다. 주일 설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전교인 서른두 명 중 유일한 일곱 살 남자아이가 부모에게 들었는지, 목사님을 찾았다. 어머니 돌아가셨으니, 자기가 인사하고 싶다 했다. 어른들이 서 있는 좁은 복도에서 이 아이는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 후에 친척들이 목사님 안아 준다고 했잖아. 안아 드려라고 말했다. 잠시 머뭇하더니 어른들이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엄마뒤로 숨어버렸다.


60세가 훌쩍 넘은 어른도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니 ‘나 이제 고아다’라는 말을 한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도 부모가 없으니 그런 말을 하게 된다.

내 친구는 서른 중반에 부모님 둘을 병환으로 떠나보냈다. 결혼도 했고, 형제들도 다 있었지만, 그 친구도 자기는 이제 고아라고 말했었다.

싱글인 한 60대 여자분도 부모님 모두 보낸 후에 자신은 고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고아는 부모가 없는 미성년자를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아무리 어른이라도 부모 앞에서는 아이라 그런가 보다.


경남 통영에 사는 엄마는 독거노인이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신다.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시골 교회 권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야?”

“집인데요?”

“어디 집?”

“서울 집인데요??”

“엄마 모시고 갔어?”

“아뇨?”

“엄마가 전화도 꺼져있고, 교회에서도 못 봐서 걱정이 되네. 카메라 되지? “

“어? 그래요? 한번 볼게요.”

엄마가 걱정이 되어 2년 전에 CCTV를 달아놓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주보가 널브러져 있고, 휴대폰은 충전기에 꼽혀 있다.

엄마는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교회 다녀왔나 본데요? 주보가 보이는데.. 주무시는데요.”

“난 교회에서 못 본 거 같은데.. 집에 있으니 다행이다. 전화기는 왜 꺼져있어서…”

“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잘 지내시는 거 같아요.”

전화를 끊고는 CCTV를 한참 동안 보았다. 계속 자고 있다.


“누나, 어머니 집에 계세요?”

이번엔 교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응 집에 계셔. 주무시고 있는데.”

“오늘 교회 안 오셔서 연락드려요. 휴대폰도 꺼져있고.. 집 앞에 왔는데 소식이 없네요.”

“비번 알려줄게 들어가 봐. 내가 보고 있으니까.”

아들뻘인 후배동생이 집에 들어가 엄마를 살짝 깨운다.

아들 친구가 깨우니 아들같이 반가워하며 눈을 뜬다.

이 아들은 집에서 가져온 간식과 수박을 조금 잘라서 엄마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다 드실 때까지 같이 먹었다.

먹고 난 수박껍질도 가져온 비닐봉지에 다 담았다. 일어나면서 말한다.

“다음 주에 봅시다. 일어나서 오세요.”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 나 안 잤다. “


치매인 엄마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주 잊어버린다.

“오늘이 주일이가? 나 모르겠다. 그냥 누우면 잔다.”

안 잤다고 했다가 누우면 잔다고 했다가. 홀로 두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교인들이 걱정하고 돌봐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릴 때, 같은 반 친구가 가지고 있는 예쁜 필통과 연필이 부러웠다. 탐심이 작동했다.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지 궁리했다. 갖고 싶은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친구 필통을 훔쳤다. 그리고는 마치 내 것 인양 들고 다니며 자랑했다. 도둑질해 놓고도 얼마나 당당했던지. 친구들은 의심했지만, 나의 당당함에 정말 똑같은 필통과 연필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넘어간 듯했다.

들키지 않았기에 더 대담해졌다. 이번에는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었다. 엄마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해서 물건 대금을 받아오면 다음날 대리점에 입금하는 식으로 일했다.

하루 장사를 다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엄마가 받아온 판매대금을 세어주곤 했다. 나는 감히 그 시절에 만원을 훔쳤다. 몰래 숨겨놓았다. 필요할 때 쓰려고 했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나들이를 갔다. 어린이날 즈음이었을 것이다. 다 같이 한산도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엄마, 아빠는 그때도 돈이 모자라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면서 서로 의논 중이었다. 나는 당당히 말했다. 나한테 돈이 있으니, 내 돈을 쓰자고 했다. 엄마, 아빠는 서로 눈빛을 오가며 나에게 말했다.

“혼내지 않을 테니 어디서 돈이 낫는지 바른대로 말해라.”

나는 눈동자가 커졌다. 10살 인생에 최대의 딜레마에 빠졌다.

바른대로 말하면 나의 도둑질이 밝혀질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크게 혼이 날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한번 더 말했다.

“바른대로 말하면 혼내지 않겠다.”


열 살짜리인 나는 바른대로 말하는 것을 선택했다. 엄마, 아빠는 약속을 지키셨다.

나를 혼내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만 하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도둑질을 끊었다.

엄마는 돈이 비는 것을 알고 계셨다. 다만, 자식 중 누가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셨을 것이다.

나는 훔치는 게 잘못이라는 걸 알았지만 들키지 않았기에 계속했던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 바른대로 말하고 난 이후로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마음에 새겼다.

혼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지키고, 그날 이후로 다시는 언급도 안 하셨던 부모님.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넘어간 일은 나에게는 ‘은혜’였다.



혼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부모님이 이제는 나의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초등학생 야단치듯이 말을 해댄다. 엄마의 기억을 위해 물건을 어디에 두는지 녹화했다. 그 영상을 보고 내 말투를 더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그것을 고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는 다 자라 어른이 되어 부모를 돌보면 ‘네가 고생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엄마가 기억이 없고 정신이 없어서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나는 모질기만 했다. 예전의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그런 은혜를 베풀지 못했다.


나이가 많아도 부모 앞에서는 아이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이제 고아야’

나에게 은혜를 가르쳐 주셨던 부모님, 나에게 도둑질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셨던 부모님!

잘해주던 못해주던 부모님의 사랑이 있기에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이제 그 은혜를 닮아가야 할 때다.


엄마, 자꾸 잊어버리고 기억이 없어도 혼내지 않을게요. 엄마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예기치 않은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