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족

마음의 준비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by 보니

갑자기 마음이 비상 종을 울린다.

주문을 외듯이 주님을 부르며 중얼거린다.

할 수 있는 기도는 '도와주세요' 밖에 없다.


식당일 하느라 시간내기 어려운 언니가 아버지 병문안 간다기에 나도 시간을 맞췄다.

벌써 만 3년이 되었다. 왼쪽 편마비로 침대에만 누워있는 아버지. 3년 동안 콧줄로 식사하시고 있다.

갈증이 나도 목구멍으로 물을 넘길 수 없어 늘 물을 찾는 아버지.

언니와 내가 병실로 들어서자 내 이름을 부른다.

3주 만에 만났는데도 반가운 모양이다. 언니와 내가 같이 가니 더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많이 예뻐졌네. 시집을 가야 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 곤란한 질문에 시집가야죠라고 얼버무린다.

병원에 누워있어도 작은 딸 형편 어려울까 봐 걱정이시다.

마른 입안은 형편이 말이 아니다. 오랜 폐렴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언니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오더니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낯선 의사목소리가 아침에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호흡양상이 안 좋다. 새벽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또 좋지 않다. 빨리 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말이 빠른 걸 들으니 나도 긴장이 된다.

가는데 3~40분 걸린다고 하니 그 정도도 못 버티겠단다.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으로 달렸다. 중간에 연락이 온다. 엠부를 짰더니 호흡이 돌아왔단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침상이 병실에서 나와서 간호사실 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눈 감고 입에는 엠부가 걸려있다. 산소방울이 침대 머리맡에서 뽀글거리고 올라 오고 있다.

기계가 아버지의 호흡과 혈압을 자동으로 재고 있다.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나는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의식이 없을 때도 말은 못 하지만 소리는 들린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큰소리로 부른다.

"아버지, 저 왔어요. 눈 떠보세요." 요지부동이다.

의사가 상황을 설명한다. 일단은 돌아왔는데 어찌 될지 모른다. 혈압승강제, 심폐소생 다 안 하기로 하셨으니 지금은 이게 최선이고, 며칠이나 갈지 몇 달이나 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다.



의식 없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나는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걸까? 혼자서 뭐라고 할 말도 없다.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들리든 말든 천국소망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니, 또 할 말이 없다.

잠시 복도 끝으로 갔다. 부모님을 먼저 보낸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의식이 없으니 이렇게 만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엄마를 만나게 해 드리라고 한다.


의사는 저녁에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저녁에 다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간호사가에게 상태를 물었다. 의식은 여전히 없는 상태다. 아까는 동공반사도 없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눈이 찔끔 감긴다. 의식이 없는 것이 이렇게 절망적으로 느껴지다니. 빨리 엄마를 모시러 가야 하지만 아버지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을 걸어본다.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간병인은 의식 없는 환자에게도 약을 투입한다. 침대로 체위 조절하여 상반신을 일으키고는 튜브에 물을 채우고, 약을 넣는다. 그대로 흘려보낸다. 콧줄을 타고 약이 그대로 들어간다. 약이 들어가는지도 소화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약 넣는 걸 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약이 내려가는 동안 침대를 일으켜 세워둔 상태로 잠시 둔다고 했다. 저기 아무 말도 없고 눈도 안 뜨고 있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가 맞긴 한데 이상하다. 마치 타인 같다.


다시 체위를 눕히고 나니 갑자기 아버지가 눈을 떴다!!!

"눈 떴어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버지를 둘러쌌다. 나는 재빠르게 말을 건다.

"아빠! 어디 갔다 왔어요? 나예요. 말 좀 해 보세요."

입에 있는 관을 빼고 나니 아버지는 힘을 다해 말을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 너거 엄마는'

엄마를 데리러 가려고 한다. 오늘 밤에 내려가서 내일 모셔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 했다.

알았으면 눈을 두 번 깜빡이라고 하니 잘하신다.

의사소통이 되는 것 만으로 마음이 한결 놓인다.


가족들이 한 명씩 아버지에게 다녀왔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굴을 보여준다.

다음날 엄마도 그녀의 남편인 아버지를 만났다.

"여보, 나 보고 싶었나? 말해봐라." 엄마 특유의 귀여움과 발랄함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엄마의 얼굴을 가져다 댄다.(참고로 엄마는 올해 87세이시다.) "여보, 사랑한다고 말해봐. 여보, 나도 사랑해" 그러자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잘 안된다. 제발 잘 알아듣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갔지만, 못 알아듣겠다.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기도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목이 매여 말이 안 나온다. 여기서 울면 안 되지. 꿀꺽 숨을 삼키고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도를 이어갔다.

엄마와 아버지는 그렇게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가족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 시절을 알기에, 엄마의 사랑한다는 말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도대체 부부의 인연은 무엇이길래 그 모진 세월을 겪고도 이토록 찐득할까?

결혼 한번 안 해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모진 세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누군가가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추천했다. 너무 잔인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현실은 더 잔인하다고 했다. 실제로 현실은 그렇다.

잔인한 세월을 견뎌낸 엄마는 아버지가 찾는다는 말에 두말 않고 따라 나셨다.

엄마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계속 반복해서 물었다.

"내가 보니 아직 더 사시겠다. 내려갈란다."

한 번 더 보고 가자고 하니, 오늘 봤는데 뭐 또보냐고 하신다.

아까 낮에 사랑고백하신 분, 같은 분이 맞죠?라고 묻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잘하라고들 한다. 그런데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와중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의식이 없을 때는 아버지가 다른 차원으로 가 버리신 것 같았다. 육체는 내 눈앞에 있는데 당사자는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임종이 드라마처럼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정말 다른 차원으로 가버리기 전에 이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과 적절한 이별인사를 하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의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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