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다이어리 기록이후, 5년 다이어리의 4번째 연도를 기록 중입니다.
한 권이 최소 366페이지짜리 다이어리이다.
한 페이지에 1년 중 하루를 기록하게 되어 있다. 3년 다이어리는 한 페이지가 3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5년 다이어리는 한 페이지에 5개의 칸이 가로로 나누어져 있다. 즉, 5년간의 특정한 하루를 한 페이지에 모두 기록할 수 있다.
나는 분홍색 표지의 5년 다이어리를 기록하고 있다. Same lines a day라고 표기한 로이텀에서 만든 노트이다. 교보문고에서 이 노트를 발견했다. 이 노트의 소제목은 the 5 year memory book이다.
이 노트에 기록하게 되면, 작년의 오늘, 재작년의 오늘을 보게 된다. 나는 작년 이맘때 어떤 마음이었고, 무슨 일을 했고, 기분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날씨도 알게 된다. 과거를 보면서 나를 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패턴이 보인다. 엄마랑 싸웠던 것도, 심지어 무얼 얼마에 샀는지도 기록해 놓았다. 나의 감정과 태도가 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처음에 3년 일기를 기록할 때는 대충 썼던 것 같다. 글씨도 휘갈겨 써 놓았다. 오늘도 일만 했다. 오늘은 머리가 아팠다. 오늘도 늦게까지 일했다 등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날은 날씨만 적혀있었다. 2021년의 한동안은 빈칸이었다. 일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던 시간을 짐작하게 된다. 코로나의 여파로 일은 더 많아졌고, 재택근무에 기존의 업무와 또 다른 업무가 겹쳐서 멘탈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빈칸의 공백이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모를 정도로 지친 일상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으면, 3줄 일기를 쓰라고 세바시의 한 강사가 소개해 주었다. 그날그날 딱 3줄의 일기를 기록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전날 가장 힘들었던 일, 두 번째는 가장 행복했던 일, 세 번째는 ‘오늘 어떻게 살지?’였다. 3줄 일기는 아침에 쓰는 일기이다. 나는 저녁에 썼다. 이 기록을 통해 내가 선호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줄인 오늘 어떻게 살지? 에서 기록했던 원칙은 다음 날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아침에 쓰면 그날 기억하고 적용하기 쉽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날아가 버리니까. 매일 일기를 잘 쓰다가도 아프게 되면, 3줄이고 뭐고, 그냥 나의 몸이 말하는 것을 해 주기 위해 급급했다. 한동안 3줄 일기를 쓰지 않다가 다시 썼다. 기록에 의존하기보다는 기억에 의존해서 썼다. 내 기억이 맞는 줄 알았다.
쓰다 보니 3줄 일기의 마지막 세 번째는 내일 할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일 어떻게 살지와 내일 할 일을 기록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어떻게 살지의 한 줄은 “순간순간 즐겁게 살기, 소통을 잘하자, 주어진 일에 감사하기, 성급하지 않기” 등이었다. 3줄 일기의 세 번째를 내일 할 일로 쓴 것을 보면, “병원 가기, 무조건 쉬기, 누구에게 전화하기” 등이었다. 아마도, 다짐대로 살지 못해서 쓰면 뭐하냐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10년 다이어리를 기록하는 사람도 있다. 10년 다이어리는 노트 자체가 좀 크다. 하지만, 10년을 한 페이지에 보는 이점이 있어서 좋다. 3년 다이어리 이후에 노트가 바뀌어 쓰게 되니 그 전의 다이어리를 굳이 찾아보지 않게 된다. 한꺼번에 10년 치를 과연 기록할 수 있을 자신이 없어 3년짜리부터 먼저 시작했던 것이다. 3년이 끝나고 5년 다이어리의 4년 차를 쓰고 있다. 나 자신도 이렇게 꾸준히 쓸 수 있을지 몰랐다. 2027년에는 10년 다이어리를 사서 기록할 예정이다. 10년을 한눈에 보면서 나의 성장과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다. 10년 후면 나는 60대 후반이 된다. 백세시대에 청춘의 나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3년, 5년, 10년의 다이어리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써본 사람으로서 팁을 주고 싶다. 나의 호불호를 찾고 싶다면 3줄 일기를 아침에 써라. 날씨만 기록한다면 기상일지가 될 것이다. 내가 그날 살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나, 기분이 좋았던 것, 아니면 후회하는 것,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면 좋다. 이런 점에서 변화를 받고 싶다고 써도 좋다. 성장하고 싶은 것을 써도 좋고, 그날 그날 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품어 왔던 것을 써도 좋다.
어떤 주제를 정해서 날마다 기록해 보는 것도 좋다. 문장 노트와 같이 그날 읽은 책에 대해 5년 다이어리에 적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이나, 깨달음을 기록하기도 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고 있는 것도 기록한다. 무엇을 기록하든 자신의 것을 쓰면 된다. 나는 날씨도 자주 기록했다. 눈이 오던 날은 거의 3~4년은 비슷하게 그즈음에 눈이 왔고, 봄이 되어도 추운 날은 거의 매년 비슷했다. 아주 가끔 다른 때도 있지만, 세상이 주는 지구온난화의 불안과는 다르게 매년 신실하게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내가 쓴 일기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7~8년쯤 일기를 쓰고 나니 일기장을 뒤적거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기록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소한 나의 감정이나 이벤트가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상태를 조금씩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매일 밤 5년 다이어리를 펼치면서 위에 적혀있는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나의 일상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보관하기도 딱 좋다. 한 권이 5년이니, 1년에 한 권짜리 5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볍고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나는 내가 쓴 나의 일기를 보면서 나를 발견한다. 기록은 나를 만드는 것 같다. 5년 다이어리로 나는 나를 발견하고 나를 빚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