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 of kings

찰스 디킨스가 아들 월터에게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by 보니

원래 계획은 한의원에 들렀다가 양재에 들러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와 안부를 물으러 가려했다. 양재에 있는 누르센터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일정이 있어 다음에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차비하여 나왔는데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는 아까워 소문난 영화를 봐야겠다 결심했다. 다행히 상영시간이 딱 맞아 고속터미널 메가박스로 향했다. 작은 영화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영화관 대절한 이 기분! 음. 나쁘지 않아~!

영화가 시작될 즈음에 남성 한 분이 저쪽 앞쪽에 자리 잡았다. 조명이 꺼지니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영화는 거부감이 없었다.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아서 나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앉았다.


이 영화는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설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가 자녀들을 위해 쓴 글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작품에서 나온 스쿠루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스쿠루지'라는 이름은 구두쇠의 대표적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25년 한국인 영화감독인 장성호라는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개봉했는데 미국에서 대박을 쳤단다. 그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개봉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초반부에 윌터라는 말썽꾸러기 순진한 꼬마 아이는 아서왕을 좋아한다. 왕이 되고 싶은 이 꼬마에게 찰스 디킨스는 왕 중의 왕인데도 마법이나 용을 사용하지 않고도 왕으로 잘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예수님 이야기이다. 영화는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잘 묘사해서 보여 주었다. 마리아가 머리숱이 참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예수님이 성장하고 자라서 어떻게 제자들을 모으는지 보여주었을 것 같다. '같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이 부분에서 수면에 빠졌기 때문이다. 만왕의 왕이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간 부분까지 보았고, 잠시 레드 썬이 되었다. 눈을 떠서 보니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는 장면이었다. 아무튼,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의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었다. 그러자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떼에게 들어갔고, 돼지들은 바다로 돌진해서 빠져 죽었다. 그 후에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왔다.


비쩍 말라 뼈만 남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근처에 나무를 의지해 네 명의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다. 그를 고쳐달라고 구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 앞에서 너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했다. 예수님 주변에는 그가 좋아서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흠을 잡으려고 마치 스파이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당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다.

그때 그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는 걸어갔다. 그의 표정과 걸음걸이를 만화에서 잘 표현해 주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때부터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기도로 아버지를 예수님 앞에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명령만 하시면 일어서지 않겠습니까? 의학적으로 근육이 다 빠지고 신경이 죽어 일어서지 못할 상황이지만 기적이 일어나면 아버지가 다시 걸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여 고쳐주시옵소서 하고 울부짖었었다. 그 당시에 진짜 아버지가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과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일어나시면 좋겠다는 두 가지 마음이 기도 중에 있었다.

지금은 천국에서 편히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더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신 것을 믿는다.


바리새인들의 간계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왔을 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고 사람들은 다 손에 든 돌을 떨어뜨리고 자리를 떠났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명도 없다. 다 죄 있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또 눈물이 났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왕 중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나를 정죄하지 않는데 나는 매일 나를 정죄하고 있다. '이게 잘못되었잖아. 또 이랬잖아. 이 구제불능 고범*죄인아!' (고범죄: 지었던 죄를 또 반복해서 짓는 행위)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만한 능력도 없다. 죄를 지을 때마다 나는 회개하는 대신 정죄를 먼저 했다. 주님은 이미 나를 용서하셨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나도 고침을 받았고, 나도 사함을 받았고, 나도 오병이어의 기적같이 먹이고 입히시고 채우셨다. 참 이상한 영화였다. 정말 그냥 보면 그냥 이야기인데도 자꾸 눈물이 났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은 고생고생을 하며 파도를 이기려 하고 있었다. 그때 폭풍 한가운데서 예수님이 바다가운데 서 계셨다. 베드로는 엄청 놀라운 발언을 한다. 당신이 예수이시면, 나로 지금 배에서 내려 당신에게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온화한 눈빛을 보며 베드로는 물 위에 한발 내디뎠다. 걸어가다가 다시 주변에서 천둥번개와 높은 파도를 보며 물에 빠진 것을 예수님이 건져 주신다. 나의 상상과 전혀 달랐다.

베드로는 정말로 물에 깊이 빠져갔고, 예수님은 그 물속으로 들어오셔서 베드로를 붙잡아 올리셨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인생에서 폭풍이 일었을 때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나도 이런 일이 너무 많았다. 갑자기 질병이 생기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제자들처럼 그 폭풍을 벗어나려고 안감힘을 쓴다. 하다 하다 지치고 힘이 빠진 후에야 예수님을 찾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그까짓 거 뭐 대충'으로 감당한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고민과 고뇌와 번뇌와 씨름과 갈등이 있었고, 기도로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갔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며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말씀을 하셨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기에 이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휘장이 찢어지는 장면을 아주 짧게 표현했지만, 아마도 이 장면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는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그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만드신 예수님! 이 축복은 예수님을 믿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마지막장면은 정말 가슴에 남는다. 어린이 윌터가 물에 빠졌는데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윌터를 건져 안으신다. 그리고는 윌터가 물 위로 예수님이 물아래로 빠지셨다. 대신 희생하신 것을 잘 표현해 준 장면이었다.


놀라운 예수님은 3일 후에 살아나셨다. 윌터 옆을 지나는 예수님의 손에는 못자국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잘 보면 보일 것이다. 모든 고난을 지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살 길을 마련해 주신 예수님 덕에 나는 오늘도 누구보다도 복 받은 사람이라는 점을 마음에 다지게 된다.


영화에서 엔딩 크레디트 직전에 이 구절이 나온다. 언뜻 보았지만 맞을 것이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 마음속에는 그래 예수 믿는 것이 최고의 복이야 라고 외쳤다.


p.s.: 좀처럼 내 주위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나는 어제, 귀하디 귀한 믿지 않는 한 사람에게 교회를 비꼬아서 말했다. 집에 와서 엄청 자책하며 회개했다.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며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의 과거와 내가 뱉은 말, 그리고 타인의 생각은 내가 바꿀 수 없다. 그래도 진리는 언제나 살아 역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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