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족

많던 우체통은 다 어디 간 거지?

엄마에게 편지 보내기

by 보니

깜박깜박하는 엄마를 위해 통영에서 떠날 때 편지를 놓고 와야겠다 생각했다.

봉투에는 ‘엄마 이 편지 심심할 때 한 번씩 보세요’라고 썼다. 그리고 통영을 떠나는 날 아침, 편지를 내 책에 끼워 그대로 서울로 들고 와 버렸다.

이왕 쓴 편지, 우체국에서 진짜 편지로 보냈다.

편지 받은 엄마가 행복해하신다.

매달 내려가는 것보다 매주 편지 보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 매주 편지를 보내야겠다.


나는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도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 있는 대학을 갔다.

처음 떨어져 지내는 자매는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웠는데도 그립다.

언니는 대구에, 나는 진주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언니가 먼저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다시 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언니는 내가 편지를 참 잘 쓴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 칭찬은 내게 자신감으로 자리 잡았다. 편지에 있어서 만큼은.



엄마도 문학소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김소월의 초혼을 읊으셨다.

장례식 마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경기도에 있는 백운호수 카페로 모시고 갔다.

엄마는 바깥나들이 좋아하신다. 호수변에 있는 야외카페에 앉아 저 멀리 산을 보면서 기분이 들뜨셨던 것 같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여보~ 하면서 딸들을 웃게 만드셨다.

엄마는 처녀 때 시 낭송을 잘해서 자주 세움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 덕에 나도 김소월의 ‘초혼’을 찾아보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엄마는 중간중간 건너뛴 부분도 있지만 거의 모든 구절을 다 낭송하셨다.

88세의 나이에도 젊은 시절의 기억은 그대로 뇌리에 박혀있는 듯했다. 그날, 엄마는 시를 서너 번 외우셨다.

낭송한 걸 기억하지 못하신 건지 아니면 다시 하고 싶으셨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김소월의 시는 '좋다'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의 감동이 있다.)


엄마는 다시 예전처럼 통영에 사신다.

주간보호센터로 출퇴근하면서 삼시 세끼를 다 해결하고 오신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한 번씩 전화를 하면 단골 멘트가 있다.


언제 올래?


곧 가겠다고 말한다. 일주일 밖에 안되었지만, 날짜를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다.

엄마는 내가 보낸 편지는 읽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시겠단다. 그 편지를 못 찾아 신경질이 난다고 하셨다. 또 보내겠다고 말하며 달래 드렸다.

오늘도 편지를 보냈다. 이왕이면 우표가격만 적혀있는 멋대가리 없는 스티커 우표보다는 실제 우표가 낫다고 생각했다. 우표를 붙여서 보내기 위해 5장을 샀다. 한 장은 우체국에서 붙여 보냈다.

우리나라 우표가 이렇게 예쁘다니!


이제부터는 우표를 붙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되는데…

우체통이 언제 이렇게 다 사라져 버렸지?

헬스장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20분간 우체통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빨간 우체통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날이다.


엄마가 아직 나를 알아보니 감사하다.

엄마가 나의 편지를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엄마가 살아계셔서 감사하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편지는 참 좋은 방법 같다.

디지털이 빠르고 편리하지만, 천천히 가는 편지가 더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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