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2nd Book_당신을 위한 필사책]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가슴이 포근해진다.
예찬시를 읽으면 가슴이 탁 트이고,
사랑시를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김춘수의 <꽃>이 그렇다.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에게로 다가가 꽃이 되어 주겠다는
시적화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감동적인 시를 학창시절에는 '시험성적'을 위해 난도질을 해버렸으니...쯔쯧
당시 국어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머리로 외우기는 가슴으로 느낀 다음에 해야 할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공부한 나는 중1, 2학년때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적이 곤두박질 치곤 했다.
그러다 중3이 되니, 겨우 감이 잡혔다.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을 가슴으로 먼저 느끼고 나니
소위 '출제자의 의도'라는 것이 간파가 되고,
시험문제도 그 의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구운몽>의 팔선녀도 어머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효심에서 비롯된 플롯이라고 생각하니,
양소유와 팔선녀가 알콩달콩 별탈 없이 살아가는 모습도
김만중의 어머님이 유배 간 아들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어머님의 마음으로 이해를 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겠는가 싶지만,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한 '효심'으로
양소유로 변신한 아들이 재주가 뛰어난 며느리들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아갈 상상을 하며
마음을 풀어주려 했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가슴으로 먼저 느껴보니, 시험에는 나오지도 않는 내용이었지만
그 덕분에 <구운몽>에 담긴 입신양명이란 '유교적 관점', 인생무상이란 '불교적 관점'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덧없는 인생인데,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양기 넘치도록 즐기고 산 인생마저 '일장춘몽'일진데,
풍진 세상 험난하게 살아갔을지언정 '일장춘몽'인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니 인생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 한 세상 살아가는데 원 없이 살아가라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덧없는 인생, 막 살아도 괜찮은 걸까?
어차피 이래도 덧없고, 저래도 덧없는 삶이니 말이다.
그런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서 '천당과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겠는가.
윤석열처럼 온 국민을 살기 힘들게 만들고서도 저 한 사람의 영욕을 위해 무진 애를 쓰면 '지옥행',
그 반대쪽 사람들은 '천국행'
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놓고 삶이 끝나는 날에 '심판'을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게 된 것이리라.
그러나 이렇게 살면 인생이 참으로 고달파진다.
그래서 김춘수의 <꽃>과 같은 아름다운 시가 필요한 것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아도 짧은 생인데,
어찌 패악질만 하며 살 궁리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