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도서관] 책 너머 도서관의 공간·인간·큐레이션 (0) 프롤로그
‘북적하다’는 말에는 “한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시끄럽게 들끓다” 뜻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유난히 마음이 자주 북적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오래된 가사처럼,
머릿속에서는 이마엽·관자엽·뒤통수엽이 작은 토론회를 여는 날이 많습니다.
오늘 할 일, 내일의 할 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주로 무심히 유튜브 숏츠를 내리고 있는 일이죠)은 서로 먼저 말하겠다며 왁자지껄 떠듭니다.
때로는 먼저 좋은 곳에 취업해 잘 지내는 선배가 떠오르거나,
관계의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합니다.
어쩌다 ‘내가 좀 고쳐야겠다’ 싶은 성격이 마음을 톡 건드리면,
지하철에서 멍한 눈으로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기도 하죠.
그 모든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는 게, 가끔은 참 버겁게 느껴집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그럴 때마다 서울 곳곳의 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엔 그저 “일을 해야 하니까, 공간이 필요하니까”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어느새 도서관은 저에게 ‘일을 위한 장소’ 이상의 의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업무보다 공간 탐색에 더 몰두한 날도 있었고, 새로운 도서관을 일종의 도피처처럼 찾은 날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공간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감각과 분위기, 사소한 편안함과 발견이 마음속의 북적임을 조금씩 가라앉혀주었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 갈 시간이 없거나, 도서관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글로 먼저 전해볼 수는 없을까?”
도서관은 단지 ‘책이 많은 곳’이 아닙니다.
도서관에는 잘 설계된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고유의 취향과 철학이 담긴 큐레이션이 있습니다.
이 작은 세계들을 글 속에 한가득 담아, 여러분이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어떤 지역을 지나갈 때 ‘아, 여기 도서관 한 번 들러볼까?’ 하고 떠올릴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이미 도서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한번 '도서관파민’이 살아나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도파민 고자극의 시대에 짧은 콘텐츠에 절여져 있는 우리 모두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몸으로 느끼는 도서관의 세계로 초대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도서관이 색다른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한 이 글을 연재하기 전에, 제게 도서관이 어떤 의미인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처음에는 ‘국문과 전공자니까 책과 가까운 게 당연하지’ 하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도서관은 제3의 장소였습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사람 사이의 복잡한 마음으로부터,
효율과 합리에 철저히 묶여 있는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공간.
읽는 행위 하나만 장려되고,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 만남 대신 얽매이지 않는 사유가 허락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취향은 요즘 말하는 ‘스페이스 덴티티’,
그리고 텍스트 기반의 트렌드인 ‘텍스트 힙’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도서관만을 전문적으로 탐방하는 큐레이터’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제가 이 이야기를 해볼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쓰라야 서점을 만든 한 대표가
“기획은 새로우면 새로울수록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기획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너무 자연스럽게 이해해주어서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기획이 생각보다 익숙한 건지,
제 주변이 유난히 이해심이 깊은 건지,
저는 후자이길 바랍니다.
그래도 이 글에는
‘조금은 이상하고 엉뚱한 사람’이라는 저만의 온도를
한 스푼 넣어두었어요.
“책이 다가 아니야!”라는 문장 그대로,
도서관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공간, 인간, 큐레이션—을 중심으로
한국 곳곳의 도서관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공간: 의자 디자인부터 좌석 배치, 인테리어, 사람의 머묾을 설계하는 방식
인간: 도서관을 운영하는 손길들, 방문하는 이들의 독특한 풍경
큐레이션: 책을 어떻게 고르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배열하는지
도서관도 사람이 그렇듯, 취향이 뚜렷한 곳이 더 매력적입니다.
저는 그런 도서관들을 찾아가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의 하루에 작은 힌트로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북적해지는 날,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길 바라며,
위클리 도서관의 첫 페이지를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