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은 둘째 출산 예정일이었다.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께서 계속되는 수축에 아기도 많이 아래로 내려와 있는 중기, 35주까지는 무조건 버텨야지 안 그러면 아기도 힘들고 본 병원에서는 출산도 못 한다고, 그러니 꼭 버텨야 한다고 당부를 하셨다. 하던 일을 예상보다 한 달 일찍 더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35주를 버텼다.
아기가 주수보다 조금 작기는 하지만 다행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38주 정기검진이 있던 6월 27일, 만삭이라 몸이 무겁기도 했지만 제 끼니에 밥을 챙겨 먹는 것도 힘들고 조금씩 자주도 배가 불러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컨디션이 아주 좋진 않았다 17주 중기 유산까지 겪고 자연 임신도 어려워진 상태로 어렵게 품은 생명이었기에 검진 날이 되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많이 긴장했었다. 그날도 별다른 생각은 안 했지만 초음파 보기 위해 들어간 진료실에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초음파로 새능이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무 말 없이 살피시는 선생님의 침묵이 길어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 찰나, 선생님께서 “우리 아기 심장 맥박이 잘 안 나온다, 조금 쉬었다가 초음파 실에 가서 아기 심박 체크 하고 다시 보자”하셨다. 선생님의 말이 시작되자마자 눈물부터 흘러내렸다. 소리도 못 내고 울기 시작하니 선생님께서 왜 우느냐고 물으시는데 대답도 못했다.
선생님은 3년 전에도 내 주치의셨다. 쌍태 임신 상태로 선둥이, 후둥이 중기 유산까지 담당하셨던 분이라 내 모든 히스토리를 알고 계셨다. 아무 말 못 하고 울었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거다. 신랑이 옆에서 걱정돼서 그러는 것 같다 대신 대답을 했더니 선생님은 “울지 마요! 안되면 오늘이라도 아기 낳으면 되니까 울지 마요!”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하지만 내 불안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초음파 실에서도 심박 수 체크 후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아기 심박 수가 좀 떨어진다고.. 아빠 엄마가 결정을 하라셨다. 별일은 없을 건데 엄마는 중기 유산 히스토리도 있고 해서 걱정도 많이 될 테고 불안하면 오늘 출산을 해도 된다고 우리 부부의 대답을 기다리셨다. 신랑은 나를 보는데 나는 선뜻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아직 작기도 하고 40주를 잘 키워서 출산하고 싶은데 혹여나 버티다 아기가 지난번처럼 잘못되면 어쩌나.. 싶고.. 별별 생각이 머리를 휘젓는 폭풍처럼 일어났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 보신 선생님께서 괜찮을 테니 오늘은 집으로 귀가하라고 하시며, 내일 아빠는 출근하고 산책 나온다 생각하고 아기 심박 체크할 겸 엄마만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인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평범하게 임신하고 건강하게 큰 이슈 없이 출산도 무사히 잘만 하는데 왜 또 이러나.. 복중에서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지금 아기가 잘 숨 쉬고 있는 건지, 배를 만지며 태동이 언제 오나, 움직임이 있나.. 불안감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신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름에 들어선 태양빛이 따가울 만큼 뜨거운데 내 속은 생명을 잃은 공포의 두려움으로 차갑게 서리가 내렸다.
아기 천사를 품고 품에 안기까지 이슈를 겪은 엄마가 있다면 여름날의 시린 두려움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검진 베드에 누워 선생님과 내 숨소리만 들리는 잠시의 시간은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온몸이 경직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새힘이의 등굣길을 함께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 선 새힘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병원 갔다 언제 와요? 오늘 못 와요? 나는 누구랑 있어요? 할머니 오세요?” 혼자 있게 될까 봐, 엄마가 또 안 올까 봐 새힘이 마음도 불안했나 보다. “엄마 병원 갔다 올게~ 이따 봐 우리 아들“ 하고 뒤돌아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태동 검사실로 향했다. 전날은 최소 심박 수가 120은 나와야 하는데 그 수치가 계속 안 나왔었다. ‘괜찮겠지?’를 주문 외우듯 속으로 곱씹으며 숨 막히는 검사가 시작되었다. 바로 앞에 심박 수가 보이는데 하트가 120은커녕 100 이하로 떨어지고 또 한 번씩은 하트가 꺼졌다.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 불안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한두 번 오셔서 패치(?)를 다시 확인하며 다시 검사하자 해주시고 나가셨는데 직전 상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상했다. 여자의 직감, 엄마의 예감.. 무엇도 무시할 수 없는 불안함..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이게 가끔 꺼질 때가 있어요, 왜 그런가요?” 간호사 선생님이 안 그래도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내려오시기로 했는데 외래 환자가 많아서 못 오시는 것 같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분명 하루 전날의 상황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때 신랑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기 괜찮지? 하는데 참고 있던 불안한 눈물이 숨도 못 쉬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 심박이 끊겨요... 100도 안 나오고 자꾸 끊긴다고...” 회의 중에 잠시 나와 전화를 한 신랑이 많이 놀랐는지 상기된 목소리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몇 번을 다시 물으며 내가 자꾸 울고 말을 못 하니 병원으로 온다고 했다. 신랑 업무에 지장이 될까 괜찮다고 그냥 있으라고 했는데 그 상황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새끼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말로는 오지 말라고 했지만 만약 그날 신랑이 진짜로 오지 않았다면 평생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신랑이 직장에 보고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오는 사이 주치의 선생님의 호출로 나는 진료실에 들어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내 얼굴이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지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아~ 엄마, 내 심장이 멎을 것 같다”라고 하셨다. 난 선생님 얼굴을 뵙자마자 또 눈물만 쏟았다. 선생님은 “우리, 오늘 아기 낳읍시다” 하시며 아기 맥박이 끊기는 구간이 있는데 그건 커넥트 상태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그래프가 이렇게 뚝 끊기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주셨는데 그동안 병원에 도착한 신랑이 진료실에 들어와 선생님께 분만 수속 절차 밟도록 안내를 받았다. 진료실에서 나오며 나는 새힘이 걱정에 신랑에게 새힘이한테 오늘 병원 갔다 온다고 했는데 또 못 가니까..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신랑은 친정 엄마에게 급히 올라오시도록 부탁드렸다.
이후에 들은 이야기로 엄마는 입이 마르고 다리에 힘이 풀리셨다고 했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그저 아기도 딸도 살려달라고.. 다 본인이 잘못했다고 기도하며 울며.. 울며.. 겨우 오셨단다.
3년 전 중기 유산 때도 딸 잘못 될까 봐 지옥 끝까지 갔다가 오신 우리 엄마... 그 모든 게 다 본인 때문인 것 같다고 힘든 딸 앞에서 눈물 삼키느라 메인 목으로 말씀도 잘 못하셨는데.. 출산 2주 앞두고 아기 심박 수가 안 나와 응급 출산이라니.. 어떻게 제정신이실 수 있으셨을까.. 차도 없이.. 시골에서 버스로 올라오시고, 코로나 때문에 딸 얼굴도 못 보고 집에서 새힘이 봐주며 딸의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 줄이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효도는 못해도 걱정은 끼치지 말아야 하는데.. 엄마에게 너무 큰 불효를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보다 더 못난 딸이 어디 있을까..
낮 12시, 가족 분만실에 들어가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첫째 때는 무통주사를 신청하고 무통주사 처치(?)도 다 받았는데 주사약을 넣지를 못했었다. 약만 들어가면 복중에 있는 새힘이 가 스트레스로 심박 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무통 천국은 내 인생에 없나.. 했는데 다행히 아주 잠시였지만 무통주사 약효과도 보았다.
촉진제 투여가 시작되고 서너 시간 즈음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 몇 분들이 들락날락하시더니 잠시 후 무슨 기계가 들어오고, 그중 한 선생님이 주치의 선생님께서 아기 상태 보시러 내려오실 거라는 말을 해주셨다. 뭔가 문제 상황이 발생한 건데..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나와 신랑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선생님이 내려오셨는데 간호사 한 분이 내 옆에 서서 귓속말로 보고를 하셨다. 환자도 알 권리가 있는 건데... 응급상황이면 더더욱 본인과 보호자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의료진의 판단은 나와 달랐나 보다. 선생님은 초음파로 새능이 상태를 체크하시며 본인 보기에는 괜찮은데 어떤 게 문제냐 물으시고 간호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셨다. 정말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아기 상태가 어떤 건지.. 무슨 상황이기에 외래 진료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내려오신 건지.. 다행인 건 선생님이 괜찮은 것 같다고 하신 상황... 이었다. 태동 검사실에서처럼 아기 심박 수가 끊기는 구간이 계속 발생했었기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이 주치의에게 보고하고 확인 하셨던 건데..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황에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초반 속도와 달리 시간은 흐르는데 자궁 문이 잘 열리지 않아서 무통을 끄고 진행을 좀 빠르게 하기로 했다. 첫째 출산 시 36시간이 걸렸고 첫 출산 후 7년 만이라서 그렇게 빠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무통 주사를 끄니까 진통에 속도가 나기 시작은 했는데 생각보다 더디긴 했다. 더딜수록, 진행될수록 출산의 고통은 몇 십, 몇 백배로 뛰었다.
밤 9시 30분 즈음, 드디어 새능이를 만났다. 100만 적었어도 저체중아가 될 뻔한 우리 새능이는 2.6 킬로 조금 작았지만 아주 건강하게 나와 주었다. 이틀 동안 우리 부부와 온 가족, 주변 지인들, 의료진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긴장시켰던 걱정이 무색하게.. 콩닥콩닥~ 건강한 심장소리를 들려주면서..
밤공기도 더워지기 시작한 6월 말 여름밤, 그렇게 우린 새능이를 뜨겁게 만났다. 1박2일, 떨어지고, 멈추고, 끊기는 태동 신호로.. 여름 날 태양이 멈춘 것처럼 숨 막히게 생과 사를 휘몰아치던 시간을 차곡차곡 차고 오르며 건강하게 숨 쉬는 우리 새능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