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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 빛 Aug 28. 2023

엄마의 뜨거운 여름

3. 너를 안은 여름


임신 35주까지 버텼으니 이제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역시나

불혹의 출산,

괜찮은 건 없었다.


아기의 심박 수 이슈 때문에

예정일 2주 앞당겨진 6월 28일, 응급으로 출산을 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 위급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제왕절개 수술 분만한 것으로 안다.

내가 자연분만했다고 하면

하나같이 겉으로는 대단하다 하지

눈빛은 ‘독하다’고 말한다^^


출산 직후

첫아이 출산 때는 없었던 훗 배앓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약으로도 안 되어 주사를 두 번이나 더 맞았는데

훗 배앓이 통증이 산통과 비슷할 정도였다.

옆에 있던 신랑은 산통 때도 소리 안 지르고 울지도 않던 내가

출산도 했는데 병실에서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소리 지르며 울고 아프다 하니 많이 당황했다.



둘째부터 생긴다는 훗 배앓이...

내 몸 이상 징후의 시작에 불과했다.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을 먹기 위해 베드를 세워 앉았다. 앉기 위해 손을 짚는데 왼손 손가락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른손도 확인해 보고 다리를 펴면서 보니 다리도 이상하게 많이 부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출산 직후니까 힘들어서 부어오를 수 있는 거지,

몸에 이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산을 밤 9시 30분에 했기 때문에 그 하루가 지나고

이틀 뒤 오전 병원을 퇴원해 미리 예약해 둔 집 앞 조리원으로 향했다.


임신 기간에도 잘 신고 다녔던 신발이 들어가지도 않고 발목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입실하니 조리원 선생님께서 수술한 거냐 물으시며 조리원 이용 안내도 나중에 해줄 테니 쉬라고 하셨다.


신랑이 딱 3일만 휴가를 내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고 새힘이의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내게는 최상의 조리원..



저녁 식사 후 잠깐 누웠다 일어나니 신랑이 새힘이랑 저녁 먹고 건너오겠단다.(집에서 조리원까지 5분도 안 걸린다^^)


하교한 새힘이가 새능이를 보기 위해 샤워까지 하고 신나는 걸음으로 조리원에 찾아왔다.


책에서 보고 익히 알고 있던 대로 우리 부부~

나는 방에서 새힘이를 먼저 만났다.

3일 동안 엄마 없이 잘 지냈는지,

할머니랑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며 안고 비비고 힘껏 표현해 주었다.


신랑이 새능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자 아기를 안겠다며 내놓으라 하는 새힘이^^

침대에 눕혀 놓으니 너무 귀여워 어찌할 바 모르면서도 자꾸 만지고 싶은 형님의 호기심으로 덥석덥석 아기를 만져본다.

두 아들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오늘이 참 감사하고 뭉클한 순간이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더 일찍 형님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새힘이 낳았을 때 충분히 쉬며

튼튼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2시간 모자동 시간은 같이 있겠지~했는데

할머니 천국을 누리고 있는 새힘이는

30분 즘 지나니 얼른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마도 할머니 핸드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일거다^^;;;



새힘이가 돌아가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밥을 많이 먹었나?

급하게 먹었나?

왜 갑자기 머리가 아프지?

뒤척이다 늦은 밤잠이 들었다.


다음날에도 하루 종일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타이레놀을 시간 간격으로 먹는데도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저녁 시간에 신랑이 새힘이를 데리고 왔는데 나는 두통 때문에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였다.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니 시원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간이라 흥분되어 막 뛰어놀고 싶은 새힘이..


침대 위에서 콩콩 뛰었는데 왼쪽 가슴이 아프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잠깐은 참았는데 계속되니 너무 힘이 들어 새힘이에게 엄마가 숨이 안 쉬어진다고 그만하라며 부탁할 정도로 정말 아팠다.

앉아서 명치에 손을 갖다 대는데 살짝 닿기만 하는데도 아팠고 심장 위치도 계속 불편했다.

앉거나 서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누우니까 숨도 안 쉬어지고 가슴도 아프고 두통도 더 심했다.

통증이 무서워서 눕지를 못할 정도였으니...

계속되는 통증에 몸을 확인했다.

손과 발이 누가 봐도 비정상적으로 많이 부어 있었다.


임신 중에도 그렇게 부어 본 적이 없었다.

발목은 잠깐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힘을 주어 걸으면 똑! 하고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당시 내 표현으로는

교양 있게 말하면 코끼리 발이라지만

내 두 눈에 내 손과 발은 멧돼지 발이었다.

양손 손가락이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있어 숟가락, 젓가락질 하는 것도 불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호되게 야단을 쳐놓고 그 순간,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났다.


조리원 방에서 하루 종일 체크하니 서 있거나 앉아 있어야 그나마 통증이 덜하고 숨이라도 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날 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지를 못했다.


그대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일요일 오전에 동네 문 연 소아과를 찾아갔는데 소아과 선생님의 소견은 장염.. 이었다.


구토나 설사, 발열이 없다고 증상을 다시 말씀드리며 재차 물었지만 선생님의 소견은 똑같았다.

의심 100 퍼센트..

장염이라는 진단을 믿을 수 없었지만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수긍하고 처방된 약을 받아왔다.


수유 시 약 먹은 사례도 있어서 생각 없이 약을 먹었는데 수유실 선생님들께 여쭈니 직수를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하셔서.. 어차피 유축을 해도 얼마 안 되는 양이라 불안함에 먹이지 않았다.

밤을 지새우고 월요일 날이 밝자마자 친정 엄마와 함께 조리원 맞은편 내과로 향했다. 폐 엑스레이 상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너무 비정상적으로 붓기도 했고 숨이 안 쉬어 진다고 하니 피 검사를 권하셔서 검사 후 귀가했다.


이틀 뒤,

저녁 식사를 위해 숟가락을 드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병원일 수 있어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앞이 아찔한 순간이다.


간수치가 너무 높고 몇 가지 이상 수치가 보이는데 의뢰서를 써 줄 테니 빨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선생님...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르르...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린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도 버거운 시간..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내 마음은 이미 지옥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첫째 새힘이를 키우..

그리고 둘째 새능이를 안아 보기까지..

테스트기 두 줄의 시작과 함께

출산까지 안정기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걸..

인생의 해, 달, 별이 떨어지는 중기 유산을 겪으며 알게 된 나는..


출산 후 심부전증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으니... 미루지 말고 빨리 가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그 순간... 온몸의 뼈가 마르는 것 같았다.


종일 베드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찾아보아도 드물지 않다는 소견과 달리 사례가 많지 않았다.

내가 아프니 그제야 나처럼 아프고 아팠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은 밤, 이른 새벽, 몇 해 전에 남겨진 사례 글에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쪽지를 보내고 댓글을 남기며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현재는 괜찮은지,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묻고 또 물었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외래가 아닌 응급실로 가야 했고

코로나 검사 결과도 있어야 하고

계속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신랑의 복잡한 상황에..

멀리 갈 수 없었다.


아픈 건 소문을 내야 한다고 했는데

가까운 지인에게 현재의 상태를 알렸다.

인근 2차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 받고

다음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계속되는 두통과 호흡 불안정으로 대기 3시간 즈음 신랑을 통해 응급실에 한 번 더 요청을 한 후에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온몸이 얼마나 바들바들 떨리는지

너무 무서웠고, 너무 추웠다.


로봇처럼 환자를 대하는 실습 의사 선생님의 처신에 화가 나도 항의할 수 없었다.

정밀한 검사를 위해 깊숙이 들어가는 정맥 검사의 찔러 누르는 통증에

소리도 크게 지를 수 없었던 차가운 응급실..

오후에 들어갔는데 밤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소견은..

응급실에서 응급으로 다룰 정도의 수치는 아니다..였다...^^:

응급실에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다.


아픈 가족들 때문에 크고 작은 일들로 병원 이슈를 많이 겪어 보았지

사실 나처럼 사지 멀쩡한 사람은 응급실에 가도 의료진들이 쳐다도 안 본다.

그만큼 위중한 사람들이 많아서 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직계 가족들의 간 병력이 있기 때문에 간 수치의 원인 여부도 중요했던 나..

응급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간과 심장 중에 더 급한 장기가 심장이기 때문에

오늘은 심장 위주로 검사를 진행한 거라고 하셨다.


폐와 심장에 물이 차 있고 간수치가 안 좋기는 하지만 둘 다 응급에서 다룰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고 설명해 주셨다.

입원해서 상태를 관찰하며 보면 좋은데 그게 안 되면 왜래 예약을 하고 해당 과로 내원을 하라는 안내를 받고 귀가..


몸조리를 위해 첫째 때 못 갔던 조리원까지 큰맘 먹고 예약해 들어갔는데 조리원에서는 밥만 겨우 먹었다. 아파서 잠도 잘 못 잤

병원 다니느라 멧돼지 다리로 매일 오가느라

발목이 회복을 못해 지금도 아기 데리고 잠시 걷고 돌아다니면 발목이 아프다.


조리원 퇴소 일에 맞춰 시골에 내려가시기로 했던 친정 엄마는 아픈 딸을 두고 그냥 가실 수가 없으셨는지 생계인 농사일을 제쳐두고 일주일 더 계셨다.


일주일 후 친정 엄마는 내려가셨고

나는 산후 도우미에게 아기를 맡기고 외래 진료를 다녀왔다.


하루가 급했는데 초음파 예약 후 3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예약을 하면서 속으로 ‘심장 초음파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 몸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출산까지 아무 이상 없던 혈압이

170이 넘는 수치로 치솟아 있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간수치도 정산 수치의 10배 정도?,

몸도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는데

환자를 위한 지금의 조치는 전혀 없이

초음파 예약만 하고 돌려보내니..

제대로 날 진단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심 100.. 지금까지 한 번도 고혈압인적이 없다는 말을 계속 하는데도

나는 모른다며 환자의 피드백을 전혀 듣지 않는 의사에 대한 불신 100 퍼센트만 남았다.



최근까지 추적 관찰을 위한 검사를 받으며

의사가 내린 결론

“원래 평생 고혈압인 걸 모르고 살았을 확률이 높다" 

거기다 임신으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로 고혈압이 와서  심장과 간에 무리가 간 스트레스 상황”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아픈 가족들 덕분에 나이롱 의사 즘 되는 내 생각엔.. 출산 후에도 올 수 있는 임신중독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실제로 나는 출산까지 급격히 살이 찐 기간이 없었다. 못 먹어서 오히려 임신 초기엔 줄어들기도 했고 38주까지 10킬로 정도 쪘는데 산부인과 담당 주치의는 태아가 작고 내 몸무게도 크게 늘어 걱정할 게 아니니 뭐든 당기는 음식을 수시로 먹으라고 하셨었다.


밤에 야식으로, 또는 과식으로 너무 먹어서 급성 위경련으로 응급실 오는 산모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렇게 새능이를 만난 여름의 나의 하늘은 뜨거웠고, 새능이를 안은 여름 내가 서 있는 여름의 땅도 뜨거웠던 1년이 지나고 새로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신생아실 모자동 2시간 동안, 신생아실 선생님께 아기가 배고프거나 응가 했을 때 우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울음소리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던 우리 새능이~


배고프고 졸리면 무조건 엄마를 향해 돌진한다.

복도 저 끝에서도 들릴 만큼 우렁차게 울어댄다.

 울음소리에 이웃의 눈치가 보여 송구한 내 얼굴이 타들어가는 순간

한 여름 삼복더위 절정 오후 3시에 아스팔트 위에 모자 없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끔 그리고 종종 새능이가 잠을 못 자고 이유 없이 울며 짜증을 낼 때는 심장이 진짜 괜찮은 건가..

혹시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건강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작년 여름 광풍처럼 지나갔던 그 두려움의 그림자가 내 속에서 오마주처럼 그려지곤 한다.

작년 여름은 새능이를 만나기까지 매일 인생 온도 40도를 찍었다....

올해 여름은 내 인생 몇 도까지 오를지..

이른 감이 있지만^^:

아마도 업무 특성상 여름 피크 기간 한 달 보름은 얼굴 보기 힘들만 큼 바쁠 신랑 덕분에, 두 아들 육아로 매일 폭염주의보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일기예보는 기상 관측에 따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제 중반을 달리기 시작한 나..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어떤 인생도 예측 가능한 인생은 없는 것 같다.



꼭 4계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수고에 딱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도 아니더라..


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써도 눈 뜨고 일어나면 몰려 있는 문제와 사건의 눈보라 속일 때도 있더라.. 부모, 자녀, 부부, 건강, 물질 등.. 나를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관계에 얽힌 집중 폭우가 몇 달씩 지속되는 지긋지긋한 인생 장마가 계속되기도 하더라..

올해 여름..

미리 예보된 역대 최고 강수량, 최장 장마 기간처럼, 때로는 내가 바라지 않는 일도 일어나고

꿈을 살아낼 힘을 잃을 수도 있겠지..


또 어느 날에는 오늘의 나처럼,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닳고 녹아진 내 엄마의 무게가 인생 저울에 달아져 힘겨울 때도 있겠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의 여름을 과연 어떤 장면을 남기고 가게 될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바라던 생명을 온몸으로 비비며 꿈꾸던 엄마의 날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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