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을부터 미루고 밀리던 신랑의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자리가 있었다. 장소는? 사랑방인 우리 집이다. 네 커플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한 커플은 신랑의 대학 동기, 또 한 커플은 올해 10월 결혼해서 이제 막 두 달 된 신혼부부이고, 마지막 한 커플은 내년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부부다. 신혼부부는 결혼식 때도 아기 보느라 얼굴 보고 인사도 못해 처음 보는 자리니 어색하기도 하고 나름 격식을 차려야 하겠지만, 연애 7년+결혼 12년 지나는 만성 아줌마가 그 정도 어색함이 문제 될 게 없었다.
음식을 나누다
동갑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모인 우리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물론 평균 연령 높이는 40대는 나 하나라는 게 치명적이다) 다양하다.
세대가 다른(?) 우리가 몇 달을 밀리던 식사 약속을 기어코 잡아한 식탁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무엇일까?
네 명의 남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6~7년을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며 직장 동료 이상의 인애를 나누는 사이(?)다.
네 명 중 지금 직장에서 가장 짬밥을 오래 먹은 우리 신랑이, 묵었어도 진부하지 않은 성실과 부끄럽지 않은 진심을 다해 일하고 있다는 걸 적어도 그 식탁에 앉은 세 남자는 알고 있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1년째 계속되고 있는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신랑의 고군분투..
쌍둥이 유산의 기막힌 웅덩이에 빠져 헤매던 시간 지난해 둘째 임신 초기. 출근 직후 집에서 내가 쓰러져 급히 돌아왔을 때..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아기의 심박수가 떨어져 응급출산으로 힘들었던 시간 병약한 아내 때문에 바람 잘 날 없이 마음 고생한 일상의 시름까지..
신랑이 짊어진 짐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 그 무게를 마음으로 알아주는 고마운 사람들. 꼭 한 번은 식탁에 모여 따듯한 한 끼를 나누고픈 사람들이다.
회를 사 온다는 가정이 있어서 아이들 먹일 치킨 한 마리를 따로 시켰는데 시골 집밥녀인 그냥 문득 스치는 생각으로 메뉴를 준비했다.(상차림? 의 근사함을 잘 모르는 1인...이라.. 회와 어울리는 한 상을 준비할 생각은 못했다....)
싱싱한 제철 모둠 회
뼈 없는 족발
골뱅이소면
식탁은 그야말로 만찬이었다.
음식이 많아서??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음식이 많아 보여서이다.
왜?? 우리 집 식탁은 딱 4인용 식탁이기 때문이다.
오~~~ 개된 식탁이라서 양쪽 사이드 아래도 x자로 막혀 있는. 4인용 식탁에 성인 여덟이 끼어 끼어 둘러앉고 음식들을 두 군데로(?) 나누어 놓으니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있었으니..
세 가정 모이는 일은 종종 있어왔고, 아이 공부 의자에 화장대 의자까지 꺼내놓으면 6인까지 앉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성인 여덟 명이 한 번에 모인 적이 없었으니 의자도 더 구비해 놓지 않았던 터....
결국 신랑이랑 내가 서서 먹기로 했는데..
그 때문에 먹는 동안 중간중간 누군가 벌떡 일어나 "여기 앉으세요" "괜찮아요" 자리 양보 다툼이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그러니까 6인 식탁으로 바꾸자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 신랑이 말을 안 들어요" "제가 죄송합니다. 다음엔 꼭 6인 식탁으로" 마무리하고 한바탕씩 웃으며 자리 소란(?)이 일어났다.
사면 더 맛있고 밖에서 먹으면 더 근사할 테지만
어린 아기가 있는 우리 식구들 때문에 밖에서는 괜히 신경 쓰일 일들이 많을 것을 우려해.. 누추하지만 집으로 초대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마음으로는 족발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허나 요즘 내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걸 간과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동네 정육점 찬스를 썼다.
다행히 주말에 한번씩 당일 직접 만든 족발을 파는 정육점이 있어서 시간 확인해가며 예약을 놓치지 않았다.
매콤한 음식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 결정한 골뱅이 소면.(식감을 위해 진미채도 넣으려고 사와서 주방 보이는 곳에 계속 있었는데 결국 깜박하고 못 넣은 건 우리 부부만 아는 비밀이다^^;;)
집에서 만드니 골뱅이 양도 아낌 없이 다 쏟아넣고 양념도 맛있게 만들어 내놓을 수 있어 감사했다.
무슨 음식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ㅡ가 중요한데 그날 식탁을 나누며 최고의 기쁨을 누렸다.
마음을 나누다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레 네 남자의 직장 생활이 화두가 되었다. 편한 일, 편한 직장이 어디 있겠나. 어디에서든지 어려운 일이 있고 어느 곳에나 힘든 사람은 있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얻은 큰 선물인 동료들. 그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탁.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조금은 편안하게 '당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웃음 섞인 그간의 일들이 오고 가는 그때 그저 작은 미소로 공감하며 큰 액션 없이 조용히 듣고 있던 여자 사람 한 분이 '그렁그렁' 두 눈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직접 들으니 또 다른 체휼이 일어났나 보다. 나중에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에서 들어보니 이미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텐데 우리 부부가 정말 힘들었겠다 싶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단다.
숨을 못 쉰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온몸의 근육이 긴장 상태가 되어 수면 시간도 예외 없이 온몸에 통증을 호소한다. 가벼운 업무 톡 하나에도 심한 압박감을 느끼며 무력해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즐거움은커녕 부담감에 무기력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2주 전엔 자는 도중 숨도 잘 못 쉬고 온몸이 강직 상태의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었는데 흔들어 깨워도 제정신을 못 차려서 자다 깬 아기를 안고 달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우리 집 요즘 생활을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다.
때로는 본인도 그렇게 힘들었다고 공감하고 때로는 당신은 어땠나요?를 물으며 각자 자신도 모르게 입었을 설움의 무거운 솜털옷을 벗어던졌다.
상은 서로 자기가 받으려 하면서도 책임은 떠밀기 바쁜 무책임한 인간성에 다들 많이 지치고 그런 고됨을 나눌 곳이 없어 더 외로운 네 남자들의 뜨거운 수다에 여자들은 공감의 한 스푼만 더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