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의 빛 Sep 04. 2023

비에 대한 기억

1. 비 내리는 날의 달콤함


비 내리는 날의 달콤함


참방참방

거친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날이면

우리 집 마당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계란을 5~6개 풀어 준비해 두고

퍽퍽한 옥수수 식빵을 계란 물 푹신 적셔서

식용유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

흑설탕 듬뿍 찍어 와구와구 먹는 사이

마루에 옹기종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았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려지던

석가레 내린 우리 집 풍경이었다.


아빠가 계시던 날엔....


할머니까지

우리 집 다섯 식구 모두

석가레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날엔....


아빠는

젊은 날 좋아했던 술의 청량함 대신

달콤한 주전부리를 참 좋아하셨다.


비가 내리는 날엔

온 동네에

우리 집 울타리를 넘는

흑설탕 달콤함이 진동하곤 했다.


성년이 되어 도시에 나가보니

도시 사람들은 가래떡ㆍ절편에 꿀을 찍어 먹더라.


토스트 식빵을 버터에 구워 계란도 올리고 쨈을 발라 먹더라.


하루 다섯 대의 시내버스가

대중교통 수단의 전부인

시골에서 자란 나는

가래떡과 절편을 설탕에 찍어 먹고 자랐다.


식빵은 제일 싸고 양 많은 옥수수 식빵을

계란 물 입혀 식용유에 튀기듯 구워서

반으로 접어 흑설탕 듬뿍 찍어 먹고 자랐다.


소나기 장대비가

시야를 가리며 쏟아지는 장마철이다.


굵은 빗줄기 사이에

기름진 고소함이 폴폴

후각을 자극한다.


세찬 빗소리 사이에

진한 달콤함이 폴폴

미각을 자극한다.


저벅저벅 투박한 장화 걸음에

깊은 그리움이 폴폴

추억을 자극한다.


함께 살던 석가레는

완전히 무너져내려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함께 했던 추억은

까마득히 잊혀버려 빛바랜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는 내게는

아직도 여전히 살아나는 추억이

비 내리는 날의 달콤함을 속삭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텅 빈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