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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 빛 Apr 18. 2024

미망인의 봄



미망인 : 남편이 사망하면 처도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뜻으로 처가 자기를 겸해서 하는 말이다.


미망인ㅡ은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아직 죽지 않은 여인'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20년 넘게 살 부딪히며 살아온 남편을 하루아침에 보냈다.

멀쩡한 사람을 괜히 수술받게 해서 죽게 만들어 놓고 아직 죽지 않은 여인..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수술실에 밀어 넣어 죽게 만들고는 아직 죽지 않은 여인..

아빠는 마흔 살 되시던 겨울~ 설날 연휴 끝에 돌아가셨다.

돈 없어 남편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엄마, 다른 장기 전부 깨끗해서 비장 수술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비장 수술만 하면 사는데 전혀 문제없다는 의사를 하나님처럼 믿었다.

그 믿음은 3주를 못 가고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부서진 건 의사를 향한 신뢰뿐만이 아니었다. 준비된 이별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예고 없이 찾아온 남편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미망인이 된 우리 엄마 인생은 그야말로 산산조각 났다.

안팎으로 남편의 손, 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골 석가래 기와집도 알아차렸나 보다. 가장이 없어졌는데 집의 석가래 지붕이 삭아 내리고 대문 기둥이 무너졌다. 밖에서 보면 집이 기울어져 있는 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늘의 해, 달, 별이 떨어지던 그해 겨울.

1월의 차가운 눈이 유난히 펑펑 쏟아지던 그날이 지나고 처마 끝 고드름도 녹아 흐르는 봄.

미망인의 봄은 아직도 시린 가슴 끝에

고드름이 꽁꽁 매달려 있었고
여전히 아린 오늘 끝에 찬 공기가 맴돌았다.

그렇게 우리 엄마의 봄을 마주했다.




마치 위태로운 우리 엄마 상태를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미망인의 봄은 결코 화창하지 않았고 절대 따듯하지 않았다.

남편 잃고 허전한 옆자리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빠 잃은 아들, 딸의 마음 눈치 보랴
남편 빈자리 채워 가장으로 살아내랴
젊은 아들 앞세운 시어머니 일상 헤아리랴

미망인에게 봄날의 햇살은 마주하기 힘든 사치였고, 고된 하루를 버티고 일상의 설움을 견뎌야 하는 광야였다.

이른 새벽 집을 나가 두 무릎이 닳도록

논, 밭에 씨 뿌리는 수고가 엄마의 봄을 살아내게 했다.

어떻게든 내 새끼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엄마의 자리가 엄마의 봄을 지탱해 주었다.




봄이다.
미망인의 봄날, 스무 해가 지나간다.

아직 죽지 않은 여인, 우리 엄마.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었던 그 숱한 시린 봄날을 먼저 간 남편의 미안함으로 살아내고
남겨진 자식들 버팀목으로 살아내고
홀시어머니의 구멍 난 가슴을 막아서며 살아냈다.

미망인의 봄날은

꽝꽝 얼어붙은 저수지 한 편, 금이 간 채로 깨진 물속에 빠진 발처럼 시리고 아팠다.

그러나
엄마의 봄날은 그 어느 날의 해보다도 따스했고
엄마의 봄날은 그 어떤 무대의 조명보다도 밝았다.


오늘까지 살아남은 여인, 우리 엄마.
미망인의 봄날이 눈부시게 빛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의 인생 속에서




포레스트웨일 출판사

[ 바람이 불어오니 봄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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