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유년기에서 비롯된 취미, 습관, 생각이나 가치관, 꿈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도 그 시절에 형성된 내면의 감각 중 하나이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골목길에서 나팔꽃을 처음 본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어느 집 담장 모퉁이에 줄기를 감아올려 가며 피어 있던 나팔꽃들. 이름처럼 작은 나팔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보라색, 분홍색, 하늘색,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 등의 꽃잎이 밤새 꿈을 꾼 듯, 맑고 투명한 아침이슬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영롱하게 빛나던 그 모습을. 그 시각적 황홀감과 여운은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때부터 보라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하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등 당시 학교 교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미다. 그 강렬한 붉은 색의 자태가 또한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나는 빨간색에도 완전히 매료되어 이후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만난 자연의 색들은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길가나 골목길, 학교 교정에서 나팔꽃이나 장미꽃을 보면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서서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어린 시절의 내가 품었던 감정들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마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색채를 매개로 소통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팔꽃과 장미꽃은 그저 아름다운 꽃을 넘어 내가 잊고 지냈던 소소한 일상 속의 아름다움과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소환해 주는 창문과도 같다. 그때의 나는 이 꽃들의 색채에 매료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와 마주하는 이 작은 연결고리를 통해 그 시절의 기억과 감성을 되새긴다. 이러한 일상의 매개체들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계속 잊지 않고, 계속 자아의 원형(原型)을 지켜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