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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08. 2022

내 몸에는 죄가 없습니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우리가 난임부부라는 것, 특히 내 몸이 난소 기능 저하로 임신을 원한다면 시험관 시술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우리 부부. 일을 마치고 오면 매일같이 난임 관련 정보를 검색했고, 긴 이야기 끝에 서울로 병원을 다니기로 하고 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걷기 운동이 좋다는 말에 매일 집 근처 호수공원을 한 바퀴씩 걷기로 약속한 터라 그날도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아주 따뜻했고, 새소리도 즐거웠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임신을 해보겠다고 열심히 나와서 걷고 있는 나의 몸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난소 기능 저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다름 아닌 '내 몸이 원망스럽다'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 몸은 죄가 없었다. 내 몸은 이제까지 살아온 평생 동안,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대로, 말 그대로 내가 욕심부리는 대로 따라와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욕심 많은 아이였다. 좋아 보이는 것은 다 해보고 싶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참 많이 괴롭히며 살았다. 학창 시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공부했던 일,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몽셸이나 초코칩을 몇 개씩 먹어치웠던 일, 밤늦게 무심코 먹던 컵라면들, 평일이면 평일이라 주말이면 주말이라 찾았던 아이스 바닐라라테, 심한 생리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검진 한번 받지 않았던 날들. 신규 발령받은 직장에서 부장님 눈치를 보느라 부당한 초과근무와 휴일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몸을 갈듯이 일했던 시절들, 남들 눈치를 보느라 끙끙대며 일한 탓에 퇴근 후에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내 인생과 몸을 방치하던 시절들. 늘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욕심나는 것, 심지어는 내 체면까지도 나의 몸과 건강보다는 늘 우선순위에 있었다. 


지나간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집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몸을 챙기지 않았던 나의 행동들이 몹시 후회스러웠던 자책의 지점도 있었었다. 하지만 이젠 그걸 넘어서 내 몸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몸을 대했던 방식들이 너무나도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하지만 그러던 시절에도 몸은 묵묵히 내 스트레스와 욕심을 받아주었다. 욕심을 내면 먹을 수 있었고, 할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임신을 하려고 하니 이제 나의 몸이 안돼,라고 말했고, 나는 몸을 원망했다. 그런 생각까지 도달하자 내 몸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리고 그동안 큰 병 없이 버텨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험관이라도 시작할 수 있고, 이렇게 걷기 운동을 하러 나올 수 있는 건강에 감사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의 몸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험관을 아예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임신은커녕 오늘 하루가 있는 것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임신이 안된다고 해서 스스로를 원망하고 혐오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과거에 몸을 대했던 방식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흔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문요한 작가님의 '이제 몸을 챙깁니다'에서처럼 더 빨리, 더 많이 성공하기 위해 오로지 도구로서만 몸을 사용해온 사람들. 학창 시절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하고, 음식이나 커피로 스트레스를 달래고, 건강검진은 뒷전이며, 몸을 갈아서 일하는 일상.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나의 몸'에 대한 배려나 사랑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욕심을 뒷받침해준 몸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마음대로 안될 때 원망만을 해왔다. 내가 욕심내면 할 수 있다는 생각. 임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내가 노력하고 내가 열심히 하면 당연히 가능하다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 맘대로 무한대로 가능한 일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난임으로 내 몸과 건강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맞았지만, 누군가는 고혈압으로, 누군가는 당뇨병으로, 누군가는 마음의 병으로 이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을 인생에 한 번쯤은 맞이한다. 나에게는 그게 난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날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난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 무엇보다 나를 먼저 살피고 나를 사랑하며 내 건강을 돌보자고 다짐했다. 내 몸을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 몸은 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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