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Dec 28. 2022

또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움은 털어버리고


붙잡을 수 없는 세월. 어느덧 연말이다. 이맘때면 한 해를 어떻게 살았던가 뒤돌아보게 된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난, 올해는 할 일을 다했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며느리’ 본 일이다. 아이들이 함께 살기 시작한 것도 거의 이년 여. 둘의 나이는 누가 이름 붙이지 않아도 만혼이었다. 같이 옆에서 지내며 한 번도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공식적인 인정을 간절히 바랐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호기롭게 ‘우리 둘이 알아서 한다’고 했고, 나만 혼자 말 그대로 ‘안달복달’이었다.

더구나 일 년의 반 이상을 한국에 나와 있으니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었다. 매일 영상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은근한 압력을 주는 수밖에. 늦여름, 미국으로 돌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아이들의 혼인을 밀어붙이는 일이었다.

이미 양가에서 가족으로 믿고 있고, 둘 다 준비가 되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귀찮음을 핑계로 시청에 가서 혼인 서약을 하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결혼 증명서를 받았다. 증인도 필요하지 않아 지척에 사는 우리 부부는 가보지도 못했다. 둘은 사진을 찍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저녁 식사를 했다며 “We did it” 하는 메시지를 사진과 함께 전송해 왔다.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묘했다. 진짜 둘이 결혼한 것 맞아? 하는.


양가의 섭섭함을 아는지, 둘은 두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혼인 서약 전에 준비가 되었던 일이었다.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California, Palo Alto)의 한 레스토랑. 방 한 칸을 빌리고, 웨딩 꽃장식을 하고, 음식은 코스로 나오고, 와인을 고르고, 아들이 입을 양복과 며느리의 드레스를 고르고, 그 모든 과정을 일일이 물어 오는 며느리를 보며 내심 고마웠다. 둘이서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인데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그 과정 안에서 한국문화 속에서 자란 며느리의 마음이 보였다면 너무 과장일까.


행사 전 날 우리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였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사돈. 이제 한가족이 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취하도록 마시지 않았던 것은 다음날 행사에 퉁퉁 부은 얼굴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웃고, 많이 즐거워하며, 많이 고마운 시간을 함께 했다.


다음날, 레스토랑에 도착하며 우리 부부도 사돈 부부도 아이들도 사돈처녀 부부도 웃음이 끊기질 않았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해 주는 사돈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애피타이저와 스파클링 와인으로 시작한 식사는 천천히 이야기들을 나누며 음식이 나오는 순서에 따라 와인도 바뀌었고 디저트와 아이스와인으로 끝났다. 누가 진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특별한 스피치를 하는 것도 아닌 그냥 편안한 대화로 3시간을 이어갔다. 그 3시간 동안이 지난 일 년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는 내 일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숙소로 돌아와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언제 또 이런 푸른색의 한복을 입을까 싶어서… 화장을 지우고, 올렸던 머리를 풀고, 한복을 벗으며, 내 어깨에 올려져 있던 모든 짐이 내려진 것처럼 시원 섭섭했다. 긴장이 풀리며 취기가 올라왔다. 자리에 눕자 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몸은 하늘을 날 듯 가벼웠다. 사돈네가 우리들 숙소로 왔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며, 그분들도 편하게 잠을 잘 잤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두 부부는 그 옛날의 친구들로 돌아가 끝도 없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옛 친구가 사돈이 되면서 공유했던 추억들과 기억들을 새록새록 이어가며 이틀을 지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기들 만의 시간을 보냈고 우리 두 부부는 아이들의 방해꾼이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우리들 만의 좋은 시간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졸음이 밀려왔다. 긴장이 사라지며 얼마를 더 졸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한복을 걸어 놓으며 만감이 교체한다. 어느 날 한 번쯤 더 입을 수도 있겠지만… 일생에 한번 입어 볼 푸른색의 한복으로 나는 나의 의무를 다 하였을까. 며느리를 맞으며 진실로 그 아이를 ‘딸’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제 잘 사는 일만 남았다.’라는 한마디만 해 주었다.


아침마다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 아이들과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인다.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2022년. 누가 뭐라 해도 아이들이 혼인을 하고, 정식으로 가족이 된 일. 이 커다란 일을 간소하지만 의미 있게 잘 치를 수 있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연말이면 항상 느끼는 아쉬움을 털어 버리고, 올해는 자신 있게, 둘의 등과 내 어깨도 툭툭 두드리며 “수고했어’ 한마디 건네고 싶다.  

내년에도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를…


망년회도, 송년회도, 신년회도 혼자 할것 같습니다. 오롯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겨울 바다를 바라봅니다. 좋은 길동무가 되는 넘실거리는 파도로 마음은 시원합니다. <<보글보글>> 에서 만나는 작가님들께 Happy New Year~인사를 전하며, 모두 모두 건필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보내기 싫어도 어차피 갈 것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