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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an 10. 2023

"묵호"를 아시나요?

동해의 나포리

 

묵호(墨湖), 옛 명주군 묵호 읍에 해당하는 강원도 동해시 북부지역을 이르는 지명이다. 묵호는 말 그대로, 검은 호수 같은 바다라는 지명이다. 묵호는 1937년 개항 이래, 명태와 오징어 어선들의 기항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떨치며 동해안의 중요 어항이었고, 근대로 들어오며 현대 산업의 발달로 석탄과 철광석 운송에 중대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었다. 어항으로 명성을 떨칠 때에는 논골 골목마다 덕장이 가득했고 덕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진흙 길이어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운송의 전진기지였을 시기에는 ‘강아지도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표현으로 산업 기지의 명성과 함께 동해안 부의 상징인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젠 그 기능조차 동해항에 넘겨주며 작은 어촌의 모습으로만 옛 이름과 추억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난 이 작고 아담한 옛날 모습의 묵호가 아직은 더 정겹다. 묵호가 정겨운 이유는 논골에서 만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지 싶다. 논골담길은 약 10여 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굽이를 돌 때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전한다. 명태와 오징어. 덕장과 장화와 어부들의 모습. 들꽃들과 시화. 나포리 다방과 기념품 가게, 추억앨범으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맨 윗 쪽엔 묵호의 상징인 묵호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어지는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 다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푸른 바다와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알록달록한 지붕들은 이태리의 나포리를 방불케 한다. 동해안의 나폴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아침 해가 솟으며 분홍의 지평선을 뒤로한 채 밤새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만선의 깃대를 올리고 들어오면 작은 어촌은 어수선한 새벽을 연다. 새벽을 깨우는 수선스러운 생기와 비릿함 속에서 찾아내는 삶의 이야기. 경매의 이름 모를 소리들과 손짓들이 이어지고 두런두런 하루가 간다.


1980년 묵호는 북쪽의 망상과 남서쪽의 북평을 아울러 동해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많은 발전을 했고 이젠 완연한 동해안의 한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봄, 남편과 함께 왔을 때, 추암바위와 천곡 황금 박쥐공원과 무릉계곡을 둘러봤었다. 강릉에 그렇게 오래 살았고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과 고모네를 갔었지만 황금박쥐공원은 처음이었다. 황금박쥐를 보지는 못했어도 자연의 석회 종유석과 물소리와 그 습함으로 박쥐가 살기에 충분하다는 것 알 수 있었다. 헬멧을 쓰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부딪힐 듯한 협곡과 검은 모래, 그리고 어두운 계곡의 어느 틈에 기대어 살고 있을 박쥐. 오랫동안 자연이 보존되기를 기대해 본다.


추암의 촛대 바위는 촛대모양으로 기암괴석이다. 10개 정도의 기암들이 모여 동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촛대바위에 걸리는 해돋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어서 해마다 1월 1일이면 관광객들이 문정성시를 이룬다. 사진작가들의 한 컷이 만들어지는 이곳, 그 옛날 작은 고모와 미역을 줍던 곳이었다.


그리고 무릉계곡, 두타산 입구에 있는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명승지이다. 공원의 입구에서 500미터 정도 들어가면 선친의 시비도 있어, 한국에 나올 때마다 들려 보는 곳이기도 하다. 선친은 그 건너편 쪽의 선산에 누워, 당신의 시비를 내려다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동해와 인연이 깊다. 엄밀히 말하면 난 ‘북평’이 고향인 셈이다. 삼척 군 북평 읍 나안 리 00로 시작하는 본적을 오랫동안 썼었고, 동해문인협회에서 최인희 문학상을 벌써 20여 년이 넘게 수여하고 있다. 또 강릉여고 동창회장인 친구도 동해에 거주하고 있어, 가끔 만나러 가기도 한다. 이런 인연들로 난 자주 동해시를 찾고, 묵호의 그리움을 알고, 북평의 추억을 기억한다.


요즈음의 동해시는 ‘바다와 하늘을 모두 즐기는 체험명소’라는 이름으로 도째비 골 스카이 밸리와 해랑 전망대를 개설했다. 해랑전망대는 도깨비방망이의 모양을 따 만들었고,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해랑 전망대와 이어지는 스카이 워크. 바다 멀리까지 유리로 만들어진 다리 아래로 바다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인다. 넘실대는 파도에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가 볼 수는 없지 않냐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언덕 쪽으로는 하늘을 나는 자전거가 있다. 케이블 와이어를 이용해서 타는 스카이 자전거. 보기만 해도 하늘을 나는 듯한 스릴을 전한다. 쳐다보고 있어도 가슴이 오그라든다. 이어지는 묵호의 바다 숲길과 바다열차를 만날 수 있는 묵호역과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어시장과 북평장.


내 어린 시절의 할머니와 고모와의 옛날이야기들은 하나도 잊히지 않고 바로 엊그제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월은 많이 흘러 그곳을 다시 가보면 길도, 풍경도 낯설지만 추억 만은 따스하게 가슴속에 내린다. 멀리 바다는 검고, 바람에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는 곳, 등대를 벗 삼아 색색의 지붕으로 그림을 그린 듯 이어진 산동네, 동해의 나포리. “혹, 그대는 내 추억 속의 작은 어항, 묵호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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