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에서 환경에 관한 다큐를 했다. 스리랑카 쓰레기 섬에서 죽어가는 코끼리들의 모습이적나라 하게 드러났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그것을 음식물과 함께 먹은 코끼리들의 죽음. 쓰레기 문제는 그 다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알고 있는 부분이다. 몇 해 전 미국의 CNN에서 한국의 쓰레기 산에 대해 방영한 적도 있다. 그것을 보며, 쓰레기 문제가 참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살면서 그 심각성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해야 하는 분리수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작은 음식쓰레기는 싱크대 분쇄기로 대부분 갈아서 내려 버리고,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들은 일반 쓰레기와 섞어서 버린다. 일반쓰레기는 분쇄된 종이와 플라스틱 통들 과 스티로폼, 헌 옷, 마스크, 일회용 장갑 등이 뒤섞여 있다. 재사용을 위해 분리하는 것은 박스와 병과 캔류, 페트병 정도이다. 그것도 재활용은 한꺼번에 노란색의 재활용 용기에 넣고, 일반쓰레기는 그린 색 통에 넣는다. 그렇게 두가지 쓰레기 통만 일주일에 한번 집 앞에 내 놓으면 차가 와서 구분해 수거해 간다. 만약 못쓰게 된 수납장이나, 전기 용품 등 같이 커다란 물품을 버려야 할 때면 수거하는 회사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수거해 가도록 한다. 물론 일정액의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지난번에 고장 난 전기 장판을 버리려고 했더니 관리실에서 3000원짜리 표를 사서 붙여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요양원으로 들어 가시고, 예전에 입으시던 옷들도 한 보따리 싸서 내 놓았는데, 그 커다란 흰색 봉투는 동사무소에서 사왔다. 그리고 그 안에 넣어 분리수거 하는 곳에 내다 놓았다.
그런데 나의 스트레스는 이것이 음식물 쓰레기인지, 일반 쓰레기인지 구분이 안되는 거다. 예를 들어 곶감의 꼭지와 감의 씨앗. 대추씨, 옥수수 대공, 아보카도 씨앗, 게 껍질, 조개 껍질 등은 음식물쓰레기 인지 일반 쓰레기인지 구분이 안 간다. 미국에선 물론 일반쓰레기로 버렸다. 이럴 때, 분리수거의 달인인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본다. 그녀는 딱딱한 씨앗들은 대부분 일반 쓰레기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여, 요구르트를 먹고 나면 그 통을 깨끗이 헹구고 말려서 플라스틱으로 분류해야 하고, 우유팩도 잘 헹구어 말리고, 접어서 종이류로 분류하라고 한다. 배송 박스는 테이프는 떼서 일반 쓰레기. 박스는 접어서 종이로. 배송 회사가 깨지지 않는 물건을 주로 넣어서 보내는 비닐은 비닐로 분리해 넣는다. 그러면서 ‘동물의 사료로 쓸 수 있는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고. 사료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일반쓰레기라고 생각하라고.’ 친절히 일려 주었다.
얼마전 늙은 호박 하나를 샀다.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여. 껍질을 베꼈는데, 너무 딱딱했다. 밤껍질이나 옥수수 대공보다 더 딱딱한 것 같아 일반 쓰레기로 버리려고 하다가 다시 또 그 지인에게 물어봤다. ‘아, 그건 음식 쓰레기예요. 잘게 갈면 사료로 가능해서요.’ 명확하게 답을 내려줬다. 그런데 미국에선 옥수수를 대공까지 모두 썰어 소의 주 사료로 쓰고 있다. 옥수수 대공은 한국에선 일반 쓰레기. 미국에선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헷갈릴 수가…
이런 것들을 좀 정확히 알려 주는 어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화기를 쓱 갔다 대면,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내지는 ‘일반 쓰레기입니다’. 또 혹은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입니다’ 등등. 궁금해서 나무위키를 찾아보았다. 2002년 이후부터 실시하고 있는 재활용 제도는 한국에서는 잘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재활용 용품 중 종이류는 일반 박스, 신문, 잡지, 팩 등을 구분해서 재활용을 하고 있을 정도이며, 쓰레기의 83페센트를 재활용한다고 한다. OPEC 국가 중 10위로 그만큼 재활용을 잘한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시골에 가면 농사 쓰레기인 비닐 더미들이 곳곳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아직도 남겨진 쓰레기의 대부분은 소각보다는 매립을 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면 미국의 실정은 어떨까? 내가 미국 집에서 모든 것을 섞어서 버렸던 것처럼,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쓰레기 재활용율이 겨우 54페센트 밖에 안된다고 한다. 너무나 광활한 땅 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니 동네마다 인적이 드문 어느 황무지 같은 곳을 찾아 깊이 파고 매립을 하면 제일 쉬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게으름에 익숙해진 미국인,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았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분리수거를 하며,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투덜대다가 환경 다큐를 보면,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공생하기 위해, 잘 지켜진 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귀찮이즘을 버린다. 지구를 지키고 실천하는 나의 모습이 되며 미국에서의 편안한 습관을 반성한다. 한국에서 잘 배운 노하우를 미국에 돌아가서도 잘 실천해 보려고 한다. 작은 나의 실천이, 내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생활의 솔선수범이,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좋은 일일 테니까.
추운 겨울 오후, 털모자를 쓰고 털목도리를 두르고 솔밭을 걷는다. 눈에 띄는 쓰레기들, 가지고 나간 작은 봉투에 담아, 산책로에서 만나는 쓰레기통에 분리해서 넣는다. 장갑을 낀 손에 흙이 좀 묻었고 허리를 숙이는 수고를 좀 했지만 좋다. 시선을 낮추어 나무의 울퉁불퉁한 밑 둥도 볼 수 있고, 푹신하게 깔린 소갈비들의 냄새도 맞을 수 있고, 운동이 더 많이 된다는 잰 걸음과 느린 걸음을 자연스럽게 섞어가며 걸을 수도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에 분리수거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보낸다. 파도 소리에 가슴 속까지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