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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20. 2023

이 아침에

<보글보글과 함께>  길을 나선다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 남편이 미국으로 떠난 빈자리가 휑하다. 거실도 썰렁하고, 짧은 일정이 피곤해서 그랬는지, 밤마다 들리던 코 고는 소리도 사라진 방, 갑자기 집안에 적막감이 감돈다. 오랜만에 수평선에서 동이 트는 풍경을 보았다. 창을 통해 보는 일출의 황홀함에 젖었던 것도 처음 한 해.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보니,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커피 한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비디오 톡으로 잘 도착했는지, 많이 피곤하겠다는 아침 인사를 건넨다. 괜찮다는 남편의 얼굴이 좀 푸석해 보인다. 미안함과 동시에, 그래도 왔다 간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인가 싶다. 엄마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엄마가 좀 안정된 상태를 보고 돌아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은 미국으로 돌아가며, ‘주일에 빠지지 말고 성당에 나가’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엄마가 가시는 길에 가장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기도라며. 그분의 뜻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머리를 말리며 오랜만에 엷은 화장도 해본다. 그래도 성당 갈 시간이 꽤 남았다. 거의 3주 동안 덮어 놓고 있었던 ‘쓰기 성경’ 노트를 펼치고, 시편을 이어서 쓴다. 두어 페이지쯤 쓰고, 가톨릭 웹사이트에서 오늘의 매일미사를 확인해 본다. 1.2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교중 미사 45분 전쯤 길을 나섰다. 걸어서 20분쯤의 거리. 새로 옮겨온 성당은 집에서 많이 가까워졌다. 바닷바람이 살랑거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로 느껴지는 아침공기가 상큼하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봄기운 완연한 아침을 온몸으로 맞는다. 인적이 드문 주일아침. 까치와 이름 모를 자그마한 새소리들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가득하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축복을 주는 듯해 마음이 기쁘다.

만개한 개나리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고 그 옆엔 연초록의 어린 잎사귀들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봄기운 완연한 주일 아침. 엄마의 평안을 기도하러 가는 길. 발걸음도 마음은 가볍고, 마주치는 거리의 풍경도 감사하다. 새들의 노랫소리로 시작한 아침. 이렇게 덤으로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엄마를 위한 기도를 했으니, 그분께서는 나의 간절함을 알아주시겠지. 지나가는 누군가가 혼자 미소 짓는 나를 본다면, ‘왜 저렇게 혼자 웃지?’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감사하다. 아직 이곳에서 따뜻한 손, 잡아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이 짧은 단상은 <콜로라도 할머니>에 발행한 '다시 여기에'에 이어지는 아침풍경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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