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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30. 2023

와인 한잔 하실래요?

소믈리에 1급 자격증을 따다


와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꽤 오래된다. 남편과 아들이 하는 주류 판매점도 10년을 넘고 보니 귀동냥도 있었지만 와인은 그냥 마시면 되는 줄 알았다. 가게에서는 세일즈 맨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했고, 그들은 한 개라도 더 우리 가게에 물건을 들여놓으려고 감언이설로 이 와인이 최고이고, 저 와인은 가격대비 가성비가 좋다는 등,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가게의 예산 안에서 물건을 구매해야 했기에 많은 신경을 썼다. 가끔 고객들이 원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가게를 하기 전, 나의 술에 대한 지식은 붉은색은 레드 와인, 흰색은 화이트 와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라임을 쭉 짜서 넣은 멕시코 산 코로나. 그리고 삼겹살에는 소주가 최고라는 정도. 그러나 가게에 매출이 커지며 나의 관심은 좀 달라졌다. 어떤 와인이, 어떤 맥주가 손님들의 관심을 좀 더 끌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건물을 지어서 새로 오픈을 하게 되자 그 넓은 매장에 물건을 사서 채우는 일을 해야 했다. 그때는 병원 간호사도 병행하고 있어서 개장 한 달 전에 휴가를 신청했다. 그래야 새로 오픈하는 가게의 물건들을 진열하고 물건의 이름과 가격을 정하여 컴퓨터 시스템에 모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장하기 2주 전, 세일즈맨들과 일대 일로 만나,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했는데, 전에 했던 가게의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와인은 종류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들에게 SOS를 보냈다. 마침 아들은 친한 친구가 유명한 식당의 매니저를 하고 있어, 그곳에 가서 와인 리스트를 받아왔다.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기존 가게의 리스트를 뽑고, 또 큰 주류도매가게에 가서 리스트를 빌려와 결정을 해야 했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것은, 우리 가족 중 와인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가게 개점과 동시에 와인 클래스를 들었다. 미국에서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을 주로 보게 되는데, 두어 달 만에 레벨 1,2를 땄다. 그러더니 아주 심각하게 레벨 3과 마스터 프로그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침 가게의 지하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만들어 두어 시청각 교육이 가능한 곳이 있어, 강의진과 강의를 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프로그램 안내지를 만들어 입구에 붙이고, 세일즈맨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자 15명 정도가 금방 모였다. 아들은 교육을 해 줄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료과 수강료 등을 책정하여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그때 가끔 그들의 강의를 귀동냥하며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냄새만 맡고 종류를 알 수가 있고 산지를 알 수가 있으며, 맛을 보고 포도 수확 연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들은 열심히 와인을 마셔 보고 내게도 마셔 보라며, 무슨 맛이 나는지, 설명해 보라고도 했다. 그때는 그냥 대충 넘어갔고, 소믈리에는 아들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이론 공부도, 와인 테이스팅도 열심히 하더니, 일 년 후쯤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었다. 그 후 난 전적으로 아들이 사라는 와인만 샀고, 지금 가게에 진열된 있는 와인의 종류는 한 7500가지가 넘다. 맥주와 위스키 등등의 하드 리쿼를 합치면 만 종류 이상의 술을 가지고 있는 대형 소매점이다. 그 안에서는 난 구매를, 아들은 와인을, 남편은 은행일을, 며느리는 데이터 엔트리를 한다.


이번 한국에 좀 오래 있게 되며, 뭔가 생산적인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말 그대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래서 시작한 일이 와인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마침, 인터넷상의 강의가 있었다. <한국 직업능력진흥원>이라는 곳에서 하는 20 강의와 시험. 그리고 강릉에 <콜라블 Collable>이라는 와인 스튜디오에서 오프라인으로 하는 강의도 있었다. 2곳에 모두 강의 신청을 했다. 온라인으로는 강의에 집중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시음을 할 수 있어서 병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주 시험을 봤다. 결과는 “합격” 소믈리에 1급 자격증이 우편으로 왔다. 아직 시작 단계이고 와인을 알아가는 1급이지만, 자격증을 받고 보니, 스스로 뿌듯했다. 이마트에 가서도 쓸데없이 와인을 기웃거리며 라벨을 읽어본다. 뉴질랜드의 말보로 지방의 화이트 와인이니, 쇼비뇽블랑이겠네. 프랑스 론 지방의 와인이네. 시라인가? 부르고뉴 지방인데, 피노노아인가?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사지 않아도 라벨을 읽어보며 공부했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


도착한 자격증과 수료증을 사진으로 찍어 남편과 아들에게 보내며, 나도 이제 그렇게 문외한은 아니지? 하며 자랑해 본다. 미국에 돌아가서 이 소믈리에 자격증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와인을 알고 마시면 음식과 페어링을 하는데 좀 도움이 될 것이고, 고객들의 질문에 조금이라도 답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제 레벨 2를 향하여 달려 볼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와인 테이스팅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혼자 있다 보니 그럴 조건이 되지 않아, 돌아가면 미국에서 레밸 2를 도전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여기에 와 있는 동안 엄마 면회 가는 일 외에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다. 배우는 일에 이렇게 신나 본 적은 언제였던가.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색깔을 보고 냄새를 맡고 천천히 맛을 보며 입에 조금 담고 있다가 목 넘김으로 서서히 그 맛을 음미한다. 입안 가득 밀려오는 풍미와 잔향. 같이 먹는 음식을 맛을 제대로 올려준다. 사람들이 즐기는 일들 가운데 하나인 먹는 재미, 그것과 함께하며 그 맛을 제대로 올려주는 와인.


늘 밤 와인 한잔 같이 하실래요? 좋은 치즈가 있는데… 돌아보니 방안엔 혼자… 슬며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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