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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22. 2024

반가운 인사

다시 강릉 4


얼마 전 연휴를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음식을 나누면 어떨까 싶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성의껏 만들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여행처럼 나와 있는 이곳의 조리기구로 나의 솜씨가 제대로 나올까 싶었지만 일단 한번 해 보자는 생각. 리스트를 만들었다. 배달을 시키면 편할 것 같아 웹에 들어가 보았지만 리스트에 있는 것들은 순차적 배송이라고 떴다. ‘그래, 음식 재료는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는 것이 최고’다 싶어 가까운 대형 마트를 찾았다.

주말이었던 탓에 지하 식품관에는 장을 보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리스트를 보며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씩 집어넣는데 안내 방송이 나온다. ‘OO산 갈비 세일 중입니다.’ 리스트에 있던 것이라 급히 발걸음을 돌려 정육 코너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려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다. 나도 얼른 커다란 팩 하나를 집어넣었다. 배송 주문을 했더라면 이런 깜짝 세일은 만나지 못했을 테니 음식 재료의 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런 깜짝 세일도 만나고, 마트의 코너 코너를 기웃거리며 운동도 되고 일석 삼조였다.

음식 재료들을 가득 담고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와인 코너를 기웃거렸다. 가성비가 괜찮아 보이는 와인 몇 병을 넣고 스낵 코너에서 저녁거리 하나를 사며 식재료 쇼핑이 끝났다.


차의 트렁크에 가득 실으며 마음은 벌써 부엌으로 향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일일이 다듬고 하나씩 만들어가며 이걸 좋아할까? 입맛에 맞을까? 다음에 또 해 달라고 할까? 너무 싱겁거나 짠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만난 전광판.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커다란 글씨가 떴다. 명절이니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발 디딜 틈 없었던 식품관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전광판에 뜬 환영 인사는 나에게 하는 인사처럼 마음으로 다가왔다. 지난해에도 같은 장소, 같은 거리를 지났고 똑같은 문구의 전광판을 보았겠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났었는데…

<지난해 추석 한상차림>


좋은 사람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 때문에 그 글귀가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일 것. 전광판에는 어느 구간이 혼잡하고, 어디에 사고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명절에는 귀성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도 건네는구나 싶었다. 그런 푸근한 마음으로 어느새 집 앞에 도착. 트렁크를 열어 식재료들을 현관 앞에 놔두고 차를 세우고 왔다. 겨우 들고 올라온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갑자기 금의환향 한 느낌이다. 고향에 온 날 반겨주는 전광판에, 한 달 열흘 정도는 걱정 없을 정도로 식재료가 가득한 냉장고에, 음식을 만들며 알게 되는 만족감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설렘. 재료를 다듬는 손은 빨라지고, 음식을 만드는 걸음은 음악을 따라 왈츠를 추듯 움직인다.


이 음식을 좋아할까? 간은 맞을까? 양은 넉넉할까? 마음이 쓰인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배려이다. 장을 봐 온 재료들을 잘 다듬고 소분해 냉장과 냉동으로 분리해 넣는다. 어느 날을 잡을까 달력을 보며 마음은 벌써 음식들을 식탁에 내고 있다. 작은 장을 열고 오래된 식기들을 챙겨보며 어떤 음식을 어디에 담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미리 상상으로 해보는 식탁준비, 그 위로 나의 사랑이 살포시 내린다.

                    <지난해 성탄절 한상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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