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고전을 좀 심도 있게 읽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늘 문학의 언저리를 떠돌며 하던 생각이었다. 열심히 읽으며 난해한 단어들을 찾고, 등장인물들 이름을 노트에 적고, 내용을 적어 가며 공부처럼 하는 독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전!’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더 늦기 전에 해 보고 싶었다. 여러 권의 책을 주문하며 마음은 들떴다. 주문한 책들 중에 첫 번째 읽을 책을 골랐다. 1932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읽기 힘든 책을 고른 이유는 그 옛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독서클럽에 들어갔고, 거기서 처음 읽었던 책이 <멋진 신세계>다. 시험관 아기가 만들어지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상과학 소설로 생각했던 오래전 기억을 소환해 책 읽기를 시작했다.
머리말부터 만만치 않았다. 간단히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느냐는 것만 알려 주면 좋았을 것을, 책 내용 전체를 요약해서 전해 주고 있었다. 그것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본문을 시작하며 공부하듯이 밑줄을 긋고 이름을 써가면서 읽었다.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읽으며 책의 몇 페이지는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책 소개 문구 중에 tvN <책 읽어 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다는 것이 있어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족집게 강의를 듣고서야 책을 읽어야 할 방향과 그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점이 정리가 되었다. 나만 밑줄 그으며 읽은 줄 알았더니, 포스트잇을 페이지마다 붙이며 읽은 페널도 있었다.
책의 내용은 블로그와 유튜브에 너무 자세히 나와 있지만 난 나름대로 요약정리해 두었다.
보통은 에세이나 시집, 단편집들을 선호 하지만 이렇게 진지한 독서를 시작한 이유는 더 나이 들기 전에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여서다. 먼 훗날, ‘퇴직 후 뭘 했더라?’ 하며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간이 오면, 오늘의 파일을 열어 다시 읽어보며 행복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그렇게 진지하게 읽었지’ 하며 나름 우아하게 나이 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고전은 몇 세기를 통해서도 현재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한 것 같다. 과거의 이야기가 있어 오늘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내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하는 고전. 한 달에 한 권도 좋고, 두세 권도 괜찮고. 늘 읽는 책들은 매일의 일과로 편하게 읽고, 고전은 날 잡아 집중해서 읽는다.
1932년에 <멋진 신세계>와 같은 고전을 쓸 수 있었던 대 작가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나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미래의 모습들을 글에 비추어 보며 공포스럽기도 하고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의 발전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책을 덮으며 읽는 동안의 수고를 잘 간직하려고 한다.
매일 일과처럼 편안하게 읽는 책은 편안함 그대로, 이렇게 집중해 읽는 고전은 또 그 나름대로 독서의 묘미가 있다. 퇴직과 함께 온 여유, 뭐든 서두르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좋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오늘을 살 수 있어 감사하다. 남아 있는 시간들도 나를 위해 쓸 계획을 해본다. 참 고마운 추억들이 내 곁에 따뜻하고 포근하게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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