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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21. 2022

봄맞이 대청소

가게를 정돈하며



  


날씨가 풀리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눈이 좀 녹으면 마음은 벌써 봄을 맞는다. 머타임이(표준시보다 한 시간 시계를 앞당기는 제도) 시작되는  날이되면(올해는 3월 13일이다)봄은 성큼 다가온 듯하다.


나는 늘 이맘때가 되면 대청소를 한다. 한바탕 뒤집어 정리 정돈을 해야 일 년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가게가 가장 덜 바쁜 2월 초부터 정리를 시작하지만, 매주 다량의 물건들 구매하고 주문을 받다 보면 늘 시간에 쫓겨 잘 정리하기 어렵다.


급한 대로 필요한 것들만 매장으로 보내 비어 있는 선반들을 채우고, 포장된 상자 채로 물건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정리 정돈이 잘 되지 않았다. 기존의 가게에서 습득이 된 노하우로 나름 정리를 해 본다고는 했지만, 매장의 크기도 종류도 그 규모가 달라 처음부터 고전을 했었다.





가게를 시작할 때 나는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와인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었고, 스카치나 위스키에 대한 공부도 한참 모자랐다. 맥주의 종류도 너무 많았다. 다행히 아들이 소믈리에 공부를 하며 가게를 도왔고 조금씩 틀이 잡혀갔다.


물건의 종류와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본매장과 똑같은 크기의 지하에 물건들을 쌓아 놓았고 시간이 갈수록 물건들은 뒤죽박죽 섞여 매장에 옮겨 진열하는 일들이 버거울 때가 많았다. 물론 직원들이 매일 물건을 받고 정리를 하고 올려와 선반들을 채우고 하지만 나도 그것들을 매번 확인해야 했다. 제자리에 있는지, 적당한 이익을 붙여서 가격을 산정했는지, 가격표시는 잘 돼 있는지, 병은 일렬로 잘 정돈되어있고, 상표는 정면을 보고 있는지, 먼지가 쌓인 것은 없는지 등등. 가족들은 너무 세세한 것까지 한다고 질색이지만, 나라도 이렇게 챙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노파심도 있었다.






매장이 가장 한가한 2월에 직원원 2명과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박스들의 더미에 쌓여 질식사할 것 같았고 일의 능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하는 정리였다.


본매장에 진열돼 있는 술병의 종류가 만 가지를 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누가 지하에 내려가도 물건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일목요연한 정리가 필요했다.


비행기 안에서 파는 50ml짜리부터 3L의 박스 와인까지 정리했다. 종류별로 또 크기 별로 나누고 나누어진 곳에 라벨을 붙이고 쓸고 닦고 정리했다. 한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던 정리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해 놓고 보니, 지하 주류 보관 창고가 훤하다. 이젠 누가 내려와도 한번 쓱 둘러보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보일 것 같다.


마침 오늘 신입 직원이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를 데리고 내려가 설명해주고 내일엔 물건을 한번 찾아보라고 시켜볼 작정이다. 이름표가 붙여진 곳에서 물건들을 잘 찾아올 수 있을지 기대해 보면서. 너무 다양한 종류들이고 유럽산 와인들의 생소한 이름들 하며, 더구나 유사한 이름들이 너무 많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 분류를 해 두었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브런치에 뜨는 발검 무적님의 술 이야기와 가수 장윤정의 유튜브 채널인 와인 주락을 빼지 않고 본다. 와인과 스카치의 이야기는 가족사 이전에 유럽 역사이고 와인 초보가 배워 가는 장윤정 씨의 맛의 표현력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맛을 음미한다. 두 곳에서 소개되는 상품들의 대부분을 판매하고 있어, 스스로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정리가 끝난 지하 주류창고는 이제 봄단장을 마쳤다. 지하에 내려가, 정돈된 박스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잘 정돈이 된 것 같다. 내 마음에도 환한 봄꽃이 되어 핀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내 마음도 서서히 한 해를 준비한다. 정리를 하며 했던 잔소리가 봄꽃의 속삭임으로 들렸기를 바래보는 주말 아침. 종업원들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보너스도 준비하고, 오늘도 가게를 찾아 주는 손님들을 '어서 오세요' 한 옥타브 높인 목소리로 반갑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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