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몰라요. 그는 내가 부를 때면 언제든지 달려왔어요."
나를 찾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아침 라운딩 직후였다. 환자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말했다.
"만약 상황이 나빠져 인공호흡기를 걸게 되면, 꼭 일주일만해주세요. 그 이상은 필요 없어요. 살고 싶은 욕심이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잖아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할 것 같은데,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녀가 중환자실로 내려온지 3일째이다. 상당히 진행된 유방암인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양쪽 가슴과 주위와 겨드랑이에 있는 임파 절까지 모두 제거했다. 그리고 항암 요법을 시작하여 다섯 번째 투약을 마친 후였다.
탈모가 심해 머리에는 터번을 썼고, 창백한 얼굴빛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약해 보였다. 항암 요법 시 흔히 동반되는 부작용인 구토가 심해 탈수 증상이 있었고 수액과 전해질 보충을 위해 암 병동에 입원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입원 중 흉부 단층촬영을 했는데 그곳에서 폐종양까지 발견되었다. 외과의와 상의하여 조직검사 계획을 잡았지만, 수술실로 내려가기 직전 심한 호흡 곤란이 있어서 급하게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왔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의식이 분명했고 산소공급만 최대로 올려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병이 점점 나빠져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면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모든 의사 결정권을 이임한다고 했다.
콜로라도 주법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동안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결정권을 이양하는데 배우자, 자녀, 부모의 순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지정한 누구에게라도 이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 환자가 의식이 분명하고 사리 판단을 하는데 문제가 없을 때 만 지정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병원에 배치되어 있는 일정 양식에 사인을 하고 인증을 받고 차트에 철해 놓았다.
그녀는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대부분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걸면 심폐 소생술도 함께 해주기를 원한다.
"가슴에 있는 혹을 제거하고 유방을 새로 만들어 넣으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 가슴은 참 수난도 많이 겪는다라고. 임신을 하고 수유를 하면서는 참 아름다운 가슴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에요. 도려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새로 만들고, 또 그 위에는 약물 주입을 하기 쉽도록 동그란 관도 하나 달아 놓았잖아요. 이제 더 이상 가슴을 혹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요.”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남자 친구와 딸과 상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갖는 것이 좋겠다는 말은 건네준 난 심폐 소생술을 하지 말아 달라는 본인의 의사를 환자의 차트에 넣어 두었다. 그러고는 환자에게 보라색 팔찌를 채워 심폐 소생술을 원하지 않는 환자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만나고 싶어 했다. 작은 콘퍼런스 룸으로 자리를 옮겨 마주 앉았다.
“아는 것처럼 우린 엄만 66세예요. 그리고 유방암 말기 환자죠. 그런데 남자 친구는 49세랍니다. 저보다 겨우 5살 많은 나이예요. 우리 엄마가 재력이 좀 있거든요. 제가 볼 때 저 남잔 엄마의 재력을 노리며 엄마가 치료받는 것을 자꾸만 방해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어떻게 날 두고 저 남자에게 의사 결정권을 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전 엄마의 유일한 피 붙이거든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녀의 말을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자식의 심정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따로 도움까지 청하는데 최소한의 도움은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남자 친구가 돌아가고, 딸이 침상 가를 떠난 틈을 타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정말 남자 친구를 믿고 그에게 모든 결정을 하게 할 거예요?"
물론 딸이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론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호흡이 가쁜데도 불구하고 긴 설명을 이어 갔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죠. 젊은 남자에게 정신을 빼앗겨 모든 결정권을 그에게 주었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남들은 몰라요. 그는 내가 부를 때면 언제든지 달려왔어요. 어떤 일을 부탁해도 ‘싫어’라고 대답한 적도 없고요. 몸이 힘들어져 꼼짝 할 수 없을 땐 날 업고 의사를 찾아갔고, 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해 낼 때 그 더러운 분비물들을 닦아 냈어요.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만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 왔고요. 누워 있는 상태에서 목욕도 시켜 주고 머리도 감겨 줬어요. 그거면 되지 뭘 더 바라겠어요. 그의 품 안에서 잠들고 싶은 것이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그러면 딸은요?"
내가 되묻자 여자가 조용히 웃었다.
"그 아인 성인이잖아요.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는데, 나의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죠. 그 아인 날 이해해 주리라고 믿어요."
다음날 그녀의 병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병실에서 밤을 새웠는지 부석부석한 모습이었다. 딸은 곁에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걸며 기관지경을 통해 폐 조직을 떼 낼 수 있었고 조직 검사를 보냈다. 남자 친구가 깊은 한숨을 쉬며 그늘 진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이 사람 살리고 싶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에요."
"그녀의 고통을 우린 잘 몰라요. 당신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통까지 함께 짊어질 수는 없잖아요. 일주일만 기다려봐요. 상태가 호전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녀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성급하게 결정할 단계는 아니니까, 딸과도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그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논의해봐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일주일이 돼 기전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고 이미 폐까지 전이된 악성 종양이었다. 다시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하기엔 환자의 몸이 너무 쇠약해 있었다.
환자의 뜻도 편하게 가는 것이었으므로 일주일 후 우린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리고 임종 간호사(환자들이 고통이 없도록 적당량의 진통제와 산소를 주어 편안한 임종을 맞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족들에게도 편이를 제공하는 특별 간호사 제도)를 연결시켜 주어 임종 간호를 받을 수 있게 주선해 주었다. 남자 친구는 우리 모두에게 나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침상에 누운 채로 쓸 수 있는 샴푸 캡과 깨끗한 목욕 타월을 부탁했다. 그는 한 시간이나 걸려 침상 목욕을 시켰다. 목욕을 시키며 얼마나 울었는지 그의 눈은 뜰 수 없게 퉁퉁 부었다.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남아 있는 방에서 깨끗한 환의를 갈아입고 그녀는 자는 듯 누워있다. 딸은 병실 밖에서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었다.
"엄마의 결정은 그것이 최선이었을 거야. 편안하게 갔으니까 이제, 그만 놓아줘."
남자 친구가 딸을 부른다.
"잘 가라는 인사는 해야지. 이 사람아."
둘을 두고 난 퇴근했다. 저녁 식탁에서 지난주에 빌려 다 놓은 7080 비디오 테이프를 튼다. 그 세월의 가수들이 늙어 보이지 않는다. 나도 그만큼 늙었기 때문이리라. 양희은의 열창이다.
'그 안갯속 끝 젊은 날로 돌아가라 한다면 싫다고 답하리라. 안갯속 방황의 젊음이 더 이상은 싫다. 적당한 세월과 인생이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내 마음 같았다. 봄날 같은 유년이 지나고 푸른 젊음이 지났다 해도 또다시 불꽃같은 사랑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의 편안함을 무엇과 바꾸랴. 한 번쯤은 그들 속에서 함께 손뼉 치며 삶을 노래하고 싶었다.
문득 남자의 어깨에 기대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간다. 울컥 눈물이 솟는다. 이별의 속도보다 더 빨리 다가오는 그리움. 그녀는 무대 속으로 빛이 되어 떠난다. 사랑을 두고 분신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