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택해 공부하는 독서의 두 번째 책. 읽지 않았어도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책.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다.
기억을 더듬어 수려한 문장이었다고 기억되는 책을 선택했다. 좀 편한 사랑이야기라고 골랐던 것은 순전히 나의 오판이었다.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소아성애자의 성향을 바라봐야 하는 시선 처리가 읽는 내내 불편했던 책.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주인공이 왜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성범죄자로 취급을 받았던 것 외에 다른 범죄 사실이 있었던 건지…
험버트가 배심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된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주인공 험버트는 프랑스에서 엄격한 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세 때, 동네 친구인 애너벨과 첫사랑을 하게 되고, 첫사랑은 장티푸스로 죽게 된다. 그 충격으로 주인공은 소녀들만 좋아하게 되는 소아성애자가 되었다.
그는 9-14세 사이의 소녀들을 님펫(Nymphet요정)이라 부르며, 그 또래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성적 매력을 편집증처럼 좋아하게 된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생활한 적도 있기는 하다. 결혼 후 아내에게 미국으로 이주를 하자고 이야기하게 되고 그때,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이혼을 하고 혼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뉴저지에서 하숙하게 되는데, 그 하숙집의 딸은 그 옛날 첫사랑이었던 애너벨과 너무도 닮았다. 원래 이름은 돌로레스이지만 험버트는 소녀를 롤리타라고 부른다. 처음엔 일방적으로 롤리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애무하는 상상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으나 페이지가 중간쯤으로 넘어갈수록 ‘우리는 갑작스럽게, 서투르게, 뜨겁게, 고통스럽게, 미친 듯이 서로에게 빠져 들었다.’라고 표현될 만큼 서로를 탐한다. 롤리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엄마와 결혼을 하고 그것을 핑계로 더욱 깊은 관계를 맺어간다.
12살의 롤리타는 사춘기 직전의 소녀로 어쩌면 생리적인 현상으로 아버지 같은 남자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유희 같은 성교를 시작으로 호르몬 발란스가 급격히 변하는 사춘기가 되며 호기심 같은 사랑을 하게 되었다.
영화 <로리타>
롤리타의 엄마인 헤이즈 여사가 험버트의 정체를 알게 되는 날, 그녀는 사고로 죽는다. 헤이즈 여사의 죽음으로 주인공은 롤리타의 법적인 보호자가 된다. 캠프에 가 있던 롤리타를 보호자의 신분으로 퇴교시키고, 미국 전역을 자동차로 데리고 다닌다. 낮에는 소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선물 공세를 하기도 하고 동네 구경을 하기도 하다가 밤이면 모텔을 찾아 뜨거운 섹스를 나누는 관계를 계속한다.
그러다 어느 날 롤리타가 사라진다. 사라진 어린 연인을 찾아 헤매고 그녀가 어느 극작가를 따라 도망을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독자의 시선에 따라 도망이 아니라 유괴 일 수도 있다). 롤리타를 찾아 헤매고, 그리움에 미쳐 가고 있던 험버트가 어느 날 편지를 받는다. 도움을 청하는 롤리타의 편지. 그의 님펫은 가난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롤리타가 따라갔던 극작가 퀄티로부터는 이용만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험버트는 퀼티가 롤리타를 배신하여 그의 님펫이 타락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분개하여 극작가를 찾아가 총으로 쏴 죽인다. 살인의 이유는 자신의 사랑했던 님펫을 누구에겐가 빼앗겨 버린 상실감과 롤리타를 배신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그리고 경찰에 잡혀 수감되고, 재판을 앞두고 주인공은 그만의 유려한 언어로 배심원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자신은 정신 나간 살인자가 아니고, 사랑에 목숨을 건 시인이고, 한 소심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주인공 험버트가 배심원들에게 고백하는, 롤리타에 대한 사랑은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연정과는 다르다. 소아성애자인 한 성범죄의 한 모습이다.
영화 <로리타>
성범죄자의 변명이며 다분히 몽환적이고, 자학적인 소설이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표현력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감정과 주변 풍경을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싶게, 표현을 했다. 더구나 상당히 어려운 화제인 ‘성’에 대해서도 그만의 유려한 언어들로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게 표현하고 있어, 세기를 통해 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성범죄 중의 한 모습인 소아성애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난 감히 이 책이, 그의 변명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책을 읽는 내내 편치 않았지만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표현력에 매료되어 계속 읽게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되면 영화를 볼 모양이다. 영화도 쉽지는 않겠지만 책의 이해와 주인공의 심리와 롤리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음 책은 고전 중에서도 좀 현대물에 가까운 것을 선택해 볼까 한다. 너무 힘이 들었던 책을 연이어 읽고 나니 공부처럼 하는 독서가 실증이 날까 미리 겁이 난다. 다음엔 좀 쉽게 읽히는 책을 택해야겠다. 그래야 모처럼 마음먹은 ‘공부 같은 독서’를 좀 더 길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틈새 사이에서 읽는 시집이나 에세이가 독서의 긴 호흡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