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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y 04. 2022

"This is me" (feat.뜨거운 씽어즈)

함께 익어 가는 시간들

                 


머리를 식히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격상 잘하지 못한다. 그래도 아주 가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찾아볼 때가 있다. 컴퓨터의 화면을 크게 해 놓고 안락한 의자에 누워서 긴장을 풀어보는 시간. 


그 시간엔 대게 노래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게 된다. 워낙 노래 부르는 것과 듣는 것을 좋아해, '불후의 명곡'부터 '복면 가왕'까지 섭렵했고, '미스터 트롯'도 모두 보았다. 그러다 요즈음에는 '뜨거운 씽어즈'라는 JTBC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80대 탤런트부터 40대 아나운서와 배우들이 모여 합창단을 만들었고 그 연습 과정을 가감 없이 시트콤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3월에 제작 발표회가 있었는데 독특했다. ‘노래로 하는 자기소개’로 프로그램의 문을 열었다. 기본 음색과 기본 역량을 측정하는, 합창의 파트를 나누어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그 장면이 멋있었다. 그야말로 배우에게 노래는 부캐이기 때문에 그 모습 자체로 충분히 훌륭했다. 그다음은 듀엣 곡을 소화하며 화음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 이어서 파트별로 모여서 하는 중창이 있었다. 선곡은 프로그램의 총감독인 김문정 음악 감독이 하는 것이겠지만, 어찌 그렇게 안성맞춤인 선택을 하였을까 싶다.


그들이 택한 최종 합창곡은 'This is me'이다. 합창단의 목표는 감독이 말한 것처럼 백상 예술 대상의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라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그 목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84세의 김영옥 배우가 내는 떨림의 소리와 80세의 나문희 배우가 ‘누구 없느냐’고 가성으로 내는 소리가 경이로울 뿐이다. 


번역된 가사로 자신을 전달하고 코치해 주는 분들을 잘 따라 하고 음악 감독들의 말을 경청하며 물론 연습에도 진심이다. ‘난 믿어, 날 믿어’라는 가사 말처럼 스스로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 시청을 하며 하나가 된다.

              


Hide away they say 
아무도 네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거라고

But I won't let them break me down to dust
하지만 나는 그들때문에 먼저처럼 주저 앉아있진 않을거야

I know that there's a place for us
우리도 당당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어

For we are glorious
우린 멋진 존재니까

When the sharpest words wanna cut me down
잔인한 말로 상처를 준다해도

I'm gonna send a flood gonna drown them out
난 파도를 퍼부어서 그 말들을 삼켜 버릴거야

I am brave I am bruised
난 용감하고,상처도 많지

I am who I'm meant to be
이 운명으로 태어났고

this is me!
이게 바로 나야!

_위대한 쇼맨OST <This Is Me>가사 중에서



안락한 의자에 앉아 듣는 화음은 때론 포근한 자장가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의도하지 않게 몸을 일으켜 누가 부르는지 보게 되기도 한다. 돌려 보기를 여러 번 하고 이어 듣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그분들이 불렀던 노래의 곡명들을 메모해 두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배워볼 요량으로.


노래가 주는 감명. 그 의미를 되 집어 본다. 딸이 없어 시집을 보내 보지도 못했고, 한국처럼 대학 입시를 준비시켜야 하는 막내아들도 없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백번 이해가 되었다. 바람의 노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계절이 지나며 꽃이 지는 이유와 헤어진 인연들을 기억해 내기도 한다. 오늘이 살아가는 이유라는데 조용필은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프로그램이 의도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는 건, 나문희 배우인 것 같다. 첫 시사회 방송 때 노 배우는 말했다. 한 번도 노래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없고 친한 언니인 김영옥 배우가 함께 하자고 해서 오게 되었다고. 나에겐 나문희 배우는 그냥 재미있는 할머니 역을 잘하는 개성 있는 배우였는데, 요즈음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할수록 매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녀의 노래에 나도 덩달아 신난다. '거기 누구 없소'라고 묻지 않아도 나 여기 있다고 달려가 함께 노래 부르고 싶어 진다. 작고 고운 소리로 시작해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에 읊조리듯 마무리하는 마지막 마디가 압권이다.





최대철이라는 배우, 화면에서 처음 만난 이병준 뮤지컬 배우, 이름도 낯선 이서환 배우, 아역배우 출신인 윤 유선 배우, 죽었다고 소문이 났던 서이숙 배우, 그 외의 여러분들이 그렇게 노래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노래를 전업으로 하는 뮤지컬 배우도 있고 밴드그룹 잔나비의 수장인 최정훈이 그분들을 도와주고 있지만, 본인들의 연습 없이 매주 1시간 40분 이상의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를 하며 ‘ 오늘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는 열정 만렙 시니어 벤저스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어려운 말 중에 오늘이 남아 있는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은 진실이고 다른 어려운 단어의 뜻은 곱새기지 않으려고 한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잘 늙어 갈 것인가를 묻는 프로그램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잘 익어 가고 있다고, 답을 하는 노익장들을 보며 나도 그 안에 스며들어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이 바로  ‘차가운 세상을 향해 뜨겁게 발을 구르자’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This is me’의 모습 아닐까. 저녁 낮달이 곱다. 서쪽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석양은 오늘도 아름답게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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