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May 19. 2022

생전 유서를 다시 쓰다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추가할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세 번째 에세이집을 낸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책은 주로 죽음에 관한 것이었고,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나의 이야기들이었다.

책 발간 후 몇 곳의 매체에서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했었다. 그 과정의 일관된 주제는 “죽음”이었고,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었다. 직업 상 많은 죽음을 만났고, 늘 생각했던 것들이기에 힘들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며, 써 놓았던 '생전 유서'가 10년 전이 아니라, 20년 전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업데이트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다시 길 떠나야 하는 이 시간이 되어서야 마음이 급해졌다.


        


옛날에 써준 생전 유서 바인더를 찾아 고칠 것들을 미리 메모해 놓고, 변호사와 약속을 잡았다. 세 번의 미팅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생전 유서 바인더가 만들어졌다. 아들에게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바인더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 세세히, 순서대로 적혀 있다고 알려 두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은 마음인 것은 나의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이면 인공호흡기를 걸지 말라던가, 혹 인공호흡기를 걸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일주일이 지나도 상태의 호전이 없다면 바로 인공호흡기를 제거 하라던가. 죽음과 동시에 신체의 모든 부분은 장기 기증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연구의 목적으로 쓰여도 된다는 것에 서명을 하였다.

처음 생전 유서를 쓸 때도 그랬지만 남편은 이번에도 장기 기증에 서명을 안 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두 번 죽는 것 같아 싫단다. 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내 신체 하나면 몇 명을 살릴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야속하기도 하다. 그 또한 그의 선택이니 강요할 수는 없다. 온전한 몸으로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육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만 하늘나라에 간다고 설명을 해도, 내 설득력이 절대 부족이다.



   

          

      


장기를 주고난 몸은 화장을 해 달라고 명기했다. 남편은 화장도 반대다. 너무 뜨거울 것 같다는 변명을 하면서. 난 농담삼아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이 먼저 죽을 꺼니, 남아 있는 내가 결정해서 할 거니까. 죽은 사람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우찌 알아?"

그래도 그이가 먼저 죽으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어야지 싶다. 장지를 미리 사놓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고, 덴버에 가톨릭 공원묘지가 있으니, 거기가 어떨까 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우리 성당의 가까운 지인들도 그곳에 사놓았으니, 죽어서도 같은 동네에서 만날 수 있고. 혹 아이들도 같이 찾아올 수 있고. 아이들이 부모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옆에 있는 아빠, 엄마 친구의 묘소도 둘러볼 수도 있고. 우리 아들도 그럴 수도 있고.  지나는 길에 들린 부모님 묘소에 옆에 있는 우리에게도 가끔 들려 묵주기도 한 번이라도 올리지 않을까. 11월 위령 성월엔 레지오에서 또 찾아올 거고. 이번 한국 방문이 끝나는 가을 즈음엔 남편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장지를 사러 갈지도 모르겠다.




          



바인더의 뒷부분에는, 내가 죽었을 때 연락할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적는 페이지도 있고, 장례절차를 어떻게 하라고 적는 페이지도 있다. 20년 전에는 없었던 페이지들이다. 아직은 빈 공간이지만 이번 한국을 다녀와서는 찬찬히 빈칸을 메꾸어 놓을 예정이다. 친한 친인척들과 친구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꼼꼼히 적어 두고. 미워했던 사람들의 연락처도 적어 놓을까 싶다. 그래야 이렇게 홀연히 이승을 떠난 사람, 더 이상 미워할 필요도 없겠네 하며 편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장례식에 쓸 노래도 찾아볼까? 혼자 웃는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도 좋고, 장사익의 구성진 노래도 좋고, 성가대에서 불러 줄 어느 성가도 환영이다. 아주 간소하게 가족들만 모여 좋은 추억을 회상하며 아프지 않고 좋은 기억만을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작은 장례식이라도 음악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외에 또 다른 것들은 아들과 며느리의 선택에 맡기고. 

영정 사진을 무얼쓸까 생각하다가, 지금 카톡 대문 사진에 나와 있는 사진을 쓸까 싶다. 너무 젊은 모습이어서,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도 그런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죽는 그 시간에도 젊고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인가, 다시 웃음이 나온다.



2022년 '생전 유서'와 20년 전 '생전 유서'



'생전 유서'를 다시 고쳐서 쓰며, 이 나이와 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마주 서서 써보고 정리해 보는 죽음의 매뉴얼.

이 바인더만 열면 내가 무얼 원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적혀있다. 웃고 있지만 진지하게 죽음의 시간을 준비하는 지금. 그 어느 시간에 하느님께서 부르셔도,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답할  것 같다. 죄 많은 한 인생이 이렇게 이승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라고.  

다만 한 가지 엄마가 아직 계셔서,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따뜻한 손잡아 드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 그 시간까지 난 그날을 준비하며 오늘을 산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책 보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This is me" (feat.뜨거운 씽어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