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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un 17. 2022

여행, 전주 한옥 마을

그 설렘의 첫날

        

월요일 아침 7시. 


다른 때 같으면 훤했을 하늘은 온통 검고 장맛비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비 속을 뚫고 떠나는 여행.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들떴지만 시야는 나쁘고 강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도 간간이 섞여 불안하고 조심스러웠다.


준비해 간 사과와 커피와 삶은 달걀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며 빨리 비를 벗어나고 싶었다. 영동 고속도로를 벗어나 중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풍경은 낯설었고 산세는 좀 부드러웠다. 다행히 비도 조금 잦아들었고 바람도 약해졌다. 창문을 내리고 비에 젖은 초록의 내음을 만끽하며 이어지는 우리들의 수다. 운전을 하는 친구의 남편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여행의 묘미인 수다는 이어져야 제맛 아닐까.

  
졸음 쉼터와 휴게소에서 쉬기도 했지만 이른 출발 때문이었는지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첫날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주 한옥마을. 친구 부부도 나도 가본 곳이었지만 이곳을 택한 것은 순전히 우리 남편 때문이었다.

남쪽 여행이 전무하였다는 한마디에 친구는 두 말도 않고 우리가 가보고 싶은 “전주와 여수”가 좋다고 했고, 친구의 남편은 운전을 자청해 주셨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한옥 마을은 차 없는 거리였다. 숙소 앞에 차를 세울 수가 없었고 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아직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안되었고, 길가에 겨우 차를 세우고 일단 한옥마을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말 그대로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강릉 단오에서 만났던 인파만큼은 아니었어도 사람에 치이는 것은 비슷했다.  개량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셀카봉을 들고 예쁜 표정들을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배는 슬슬 고팠지만 근사한 저녁 약속이 있어 김밥 한 줄과 떡볶이로 간단히 허기만 면했다.

 



        



한지 공예와 부채 공예 등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은 월요일이라 휴관이었고 사람에 치이는 거리를 지나 <경기전>을 찾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어진)를 모신 장소이고 전주 사고도 있었다. 경내의 풍광은 대나무 숲과 울창한 소나무들로 잘 이루어져 있으나 오래된 단청은 많이 손상됐고 보수가 필요해 보였다. 


경기전 안의 박물관은 휴관일이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나와야 했다. 바로 길 건너의 전동 성당, 국가지정 사적 제288호인 전동 성당은 호남의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이라고 한다. 성당 건물은 130여 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1791년 윤지창, 권상연이 최초로 순교한 역사적 장소일 뿐만 아니라, 1801 신유박해 당시에도 5명이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성지이다. 그러나 이 건물조차도  5월부터 내년 초까지 보수 공사를 한단다. 외부와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어 안쪽의 건물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신자로서 아쉬움을 나타냈고, 난 다행히 한번 다녀왔던 적이 있어 작은 지식으로 설명을 해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시간이 되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남편의 대학동창을 만나러 나섰다. 적당히 시장했고 남도의 음식 맛이야 누구라도 다 아는 일이고.

 
역사를 자랑한다는 <호남각>에서 남편은 친구를 만났다. 내 친구 부부와 남편 친구 부부는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별 어색하지 않게 식사자리는 이어졌고 역시 남도의 음식은 ‘맛’ 그 자체였다. 모주로 시작하여 소주병이 여러 개 비었다. 거나하게 취한 남자 세 사람과 함께한 할머니 셋도 손주들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직 손주가 없는 나는 부러움으로  손뼉을 치며 즐겁게 이야기를 거들었다.


자리를 옮겨 유자차 한잔을 마시고 헤어질 시간. 다음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과식을 했으니 운동을 해야겠기에 다시 한옥마을의 곳곳을 살피며 걸었다. 어둠이 내리며 한산해진 거리. 낮보다 더 아늑하고 볼거리들이 많은 듯했다. 한잔 더 할 수 도 있었지만 내일의 여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따뜻한 온돌 위에 몸을 눕히며 익숙지 않은 잠자리가 걱정이 되긴 했다. 숙소를 예약하며 침대가 있으면 그것으로 선택하겠다고 했지만 한옥마을의 숙소는 대부분 이부자리를 깔고 자는 온돌 식이 었고, 익숙지  않은 우리는 좀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피곤은 참 좋은 수면제였다. 다음 날의 일정을 기대해보며 셀렘의 첫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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