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설렘의 첫날
월요일 아침 7시.
다른 때 같으면 훤했을 하늘은 온통 검고 장맛비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비 속을 뚫고 떠나는 여행.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들떴지만 시야는 나쁘고 강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도 간간이 섞여 불안하고 조심스러웠다.
전주 한옥마을. 친구 부부도 나도 가본 곳이었지만 이곳을 택한 것은 순전히 우리 남편 때문이었다.
남쪽 여행이 전무하였다는 한마디에 친구는 두 말도 않고 우리가 가보고 싶은 “전주와 여수”가 좋다고 했고, 친구의 남편은 운전을 자청해 주셨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한옥 마을은 차 없는 거리였다. 숙소 앞에 차를 세울 수가 없었고 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아직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안되었고, 길가에 겨우 차를 세우고 일단 한옥마을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말 그대로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강릉 단오에서 만났던 인파만큼은 아니었어도 사람에 치이는 것은 비슷했다. 개량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셀카봉을 들고 예쁜 표정들을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배는 슬슬 고팠지만 근사한 저녁 약속이 있어 김밥 한 줄과 떡볶이로 간단히 허기만 면했다.
한지 공예와 부채 공예 등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은 월요일이라 휴관이었고 사람에 치이는 거리를 지나 <경기전>을 찾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어진)를 모신 장소이고 전주 사고도 있었다. 경내의 풍광은 대나무 숲과 울창한 소나무들로 잘 이루어져 있으나 오래된 단청은 많이 손상됐고 보수가 필요해 보였다.
경기전 안의 박물관은 휴관일이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나와야 했다. 바로 길 건너의 전동 성당, 국가지정 사적 제288호인 전동 성당은 호남의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이라고 한다. 성당 건물은 130여 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1791년 윤지창, 권상연이 최초로 순교한 역사적 장소일 뿐만 아니라, 1801 신유박해 당시에도 5명이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성지이다. 그러나 이 건물조차도 5월부터 내년 초까지 보수 공사를 한단다. 외부와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어 안쪽의 건물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신자로서 아쉬움을 나타냈고, 난 다행히 한번 다녀왔던 적이 있어 작은 지식으로 설명을 해주며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