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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un 27. 2022

여행, 충주 탄금대

설렘의 셋째 날


“일어났니?”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니… 아직”

"오동도 갈 거야?”

“그럼, 그럼… 잠시만…”

“내려가서 기다릴게.”




겨우 눈을 비비고 양치만 하고 서둘러 내려갔다. 바닷바람은 조금 서늘했다. 외투의 깃을 올리며 빠른 걸음을 걸었다.


예전에는 여수에서 가장 까까운 작은 섬이었을 곳이 이젠 방파제를 놓아 차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1933년 길이 768 미터의 방파제가 준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고, 1968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방파제를 걸으며 맞는 아침바다 해무, 갯내음과 떠 있는 작은 섬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왜 해상공원인지 알게 해 주었다. 방파제를 지나 오동도에 들어서니 ‘동백열차’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타는 꼬마 기차 같은 것인데 오동도의 대표 식물인 동백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한번 타볼까 하고 기웃거렸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운행을 하지 않았다.


방파제를 따라 조금 더 걷다가 돌아갈 길이 먼 것 같아 둘레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을 약속하며 돌아 나왔다. 전날 남도 음식의 과한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음을 잘 알았던 우리는 커피와 황탯국 컵밥으로 가벼운 아침 식사를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 네비를 쳐 보니 6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고향을 들려 보고 가기로 했다. 충주의 탄금대.


전날의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을까, 마음을 쓰는 남편 친구를 위해 아침 운전은 친구가 했다. 돌아오는 길의 지루함을 덜어 내기 위해 거의 한 시간마다 휴게소를 들렸다. 휴게소에서 맛보는 호두과자, 핫바, 소떠소떡, 경주빵, 전주 초코파이 그리고 커피. 아침을 좀 적게 먹었던 이유가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먹는 것. 여러 곳의 휴게소가 지나고 친구 남편이 다시 운전대를 잡자 차는 좀 더 속력을 내었다.


그러나 문제는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속도를 체크하는 CCTV 덕택에 제한 속도 이상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만약 그렇게 많은 카메라를 숨겨서 설치했다가는 ‘인권 침해’ 어쩌고 하면서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게 곳곳에 카메라가 있다고 알려주는 네비도 신기했고, 그런 카메라가 있어도 우리 옆을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도 놀라웠다.





충주에 도착. 몇십 년 만에 다시 와 본 곳은 남편도, 나도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대충 여기가 충주호 근처이고 저기가 예전에 자기가 살았든 무슨 동네인 것 같다는 추측 정도였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 시댁의 선산으로 산행을 갈 때  건넜던 작은 개울들. 옥색 치마저고리에 흰 버선에 고무신을 신었던 내가 난감해 하자 남편은 나를 업고 개울을 건넜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랬던 개울은 온 데 간데없고 강줄기는 넓고 깊어졌고 어느 방향이 었는지 그 감각 조차도 없었다. ‘아마 저쯤이었을 거야’,라고 남편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탄금대를 찾았다.  1976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에 명승 제42호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본래 대문산이라고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일품이다. 또한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탄금대라고 설명해 놓았다.


현재도 가야금 학교가 진행 중이라는 플랭카드를 보며 가까운 곳에 살았더라면 이런 프로그램에서 그 옛날의 정취를 배워 보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충주 댐을 만들며 수몰된 동네들을 쳐다보고 건너편 산세들을 눈에 담고 떠났다. 신도시 충주는 그 옛날의 추억들을 남편의 가슴에만 두고, 언제 또 온다는 기약도 없이 헤어진 연인처럼 시선 뒤로 떠나갔다.



        



들리는 휴게소마다에서 주전부리 먹거리로 추억의 맛을 소환해서 인지 점심을 먹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강릉에 도착해서 이른 저녁을 먹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었다. 저녁은 곤드레밥과 생선 구이. 빠질 수  없는 곤드레 막걸리. 2박 3일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아직 하늘이 훤한 시간에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우리들을 태우고 며칠을 꼬박 수고해 주신 친구 남편, 그를  오늘부터 ‘배려 허’라고 부른다. 허 선생님에서 좀 더 존중의 의미를 담아서.


며칠 동안 남도의 풍경을 제대로 보고 온듯하다. 정갈함과 후한 인심과 정겨움이 어우러지며 초여름의 진초록의 산세는 여행객의 발길을 온 가슴을 벌리며 반가워했다.

 

여러 번 가 보았던 곳이지만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마음을 함께 해 준 친구 부부.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 새삼 깨닫게 해 준 여정이었다. 해마다, 올 때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생각해 보고 계획해 보는 들뜨는 마음은 늘 이렇게 여기에 있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과 그에 못지않게 배려해주는 친구의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따뜻한 손을 잡고 다정한 시선을 마주하며 또 그렇게 뚜벅뚜벅 가보아야겠다.

        

여독이 아직 남아 있던 다음날 아침, 전화를 건다. 피곤보다는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 좋았다는 따듯한 한마디. 감사하고 고맙다. 이 고마운 우정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내 마음을 전한다. " 사랑하는 친구, 또 함께 여행하자. 작년의 울릉도도 올해의 남도도 참 좋았어.  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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