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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ul 25. 2022

나는 왜 역이민을 생각하지 못할까

돌아온 그가 부럽다

                    


초등학교 동창 단톡방에서 옛 친구들의 소식을 자주 듣는다. 주로 자녀들의 경사와 부모님들의 조사이지만 신문에 칼럼을 싣는 친구는 그때마다, 사업을 하는 친구는 오늘의 경제 상황을, 또 다른 친구는 아침마다 좋은 이야기와 음악을, 장로인 친구는 신실한 기도를 올려준다. 


아내의 글을 퍼 온 친구도 있었다. 아내의 허락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진을 첨부한 섬세한 여행기. 만약 캐나다 횡단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없이 좋은 가이드가 될 같아 잘 저장해 두고 있다. 


친구는 캐나다에 이민을 가 있었다. 같은 대륙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옆에 사는 듯한 느낌이었고, 이민을 막 왔던 십여 년 전 한번 통화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미국에서 한번 더 통화를 했다. ‘용기가 참 좋다. 역이민…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시작했던 이야기는 ‘다시 돌아간다는 용기, 참 부럽다’라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강릉에서 친구 부부를 다시 만났다. 아직 현지에 적응 중이라지만 내가 보기엔 이미 강릉사람이 다 된 것 같았다. 친구야 강릉이 고향이니 돌아오고 싶었겠지만 아내는 남편 말고는 아무 연고가 없는데… 그래도 지낼만하단다. 강릉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고 잘 알려주고… 말투를 제외하고는… 하면서 웃는다. 그 말투도 강릉을 시댁으로 두고 30여 년을 살아보니, 이젠 그 말투조차 정겹게 느껴진단다. 나보다 더 강릉 사람이 된 것 같은 친구의 아내.


캐나다로 떠날 때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살던 이야기, 돌아오기로 결정했던 시간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보다 더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있음에 놀랐다. 나의 이민생활은 돌아올 것을 계획하고 떠났던 유학 생활의 연장이었지만, 친구는 생활의 근거지를 완전히 옮기는 이민이라는 것으로 새 땅에서 새롭게 출발한 것이었다. 


그 새로움이 익숙할 만한 시점인 십 년의 세월을 지내고 다시 돌아온 고향. 아무리 시골라고 하여도 도시의 모습도 변했고 형제나 친구들도 다들 그들 각자 방식대로 살고 있을 터인데. 삶의 터전을 두 번씩이나 옮긴다는 것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무도 옮겨심기를 하면 처음에 비틀거리고 더구나 커다란 나무를 옮기는 일은 더 힘들다. 흙의 구덩이 크기부터,  지지대도 균형을 맞추어 매어 주어야 하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최적의 알맞은 영양과 물을 주어야  커다란 뿌리를 자리 잡고 잔뿌리들을 내리며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된다. 작은 나무 하나도 그럴진대 한 가족이, 그런 일을 두 번씩이나 한 친구와 아내의 결정과 용기가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날 때는 떠날 때의 당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또 돌아 올 결정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역이민은 돌아온 곳이니 처음 이민을 갔던 새로운 땅보다는 쉽게 적응이 되겠지. 말도 문화도 익숙한 곳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을 정리하고 이사 짐을 꾸리며 갈등은 없었을까?  넌지시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내밀한 부분까지 알려고 하는 실례를 저지를까 봐 못하고 말았다. 그냥 겉모습 그대로, 이민을 갔었고 지금은 돌아왔다는 사실만 보며, 그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친구 부부를 만나고 돌아온 길.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사십 년의 세월. 왜 한 번도 돌아온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더구나 난 엄마가 혼자 계신데도. 늘 여행자처럼. 늘 돌아가야 한다는 자세로 왔다 간다는 마음으로 살았을까. 그곳이 그렇게 더 편할까. 


아직도 어눌한 언어와 아직도 배우는 그곳의 문화와 아직도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그곳. 문득문득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 한밤중에도 머리가 하얗게 되는 일.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으면 다음날은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냥 몸도 마음도 허공에 뜬 채 거리를 헤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문득 낯선 얼굴을 만나면, 아~ 참, 여기는 미국이고 난 여기에 살고 있지, 라는 인지가 든다. 한숨을 내쉬며 이곳이 내가 마지막 누울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돌아 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의 면회가 잦아질수록, 강릉의 모습들이 익숙해질수록 그 해답이 없는 채, 종일 비를 퍼붓는 비처럼 어두운 하늘이 되어 마음으로 가라앉는다. 내일 새벽 해가 뜨면 침잠했던 부유물들이 조금씩 기포를 풀어내며 올라오고, 마음은 좀 가벼워지며 해답이 찾아 질런지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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