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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15. 2022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

콜로라도 이방인

               

<한상 차림>

    


설날을 보내며 예전에 하지 않던 일을 좀 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을 맞기 위한 준비 겸 일종의 시연 같은 것이었다. 


지난 가을 책 출간을 위해 한국에 들어갔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건 추수 감사절 직전이었다. 새로 시작한 가게가 연중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작년엔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갔지만 올해는 달랐다. 간략하게 추수 감사절 음식을 만들고 김장도 했다. 성탄절을 준비하고, 설날에 떡만둣국과 전도 만들었다. 새 식구, 예비 며느리 덕분이었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대충 먹었지만, 지난 1년은 달랐다.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하는 지난 일 년 동안 핑계만 있으면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불러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오라고 부르는 남편에게 질색을 했지만, 남편은 핑계만 있으면 ‘밥 먹으러 올래?’하고 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좋아하며 부르면 달려왔다. “아, 이거 맛있어요. 다음에 꼭 가르쳐 주세요. 이거 싸가지고 가도 돼요?”라고 말도 예쁘게 하는 며느리 덕분에 조금씩 음식을 더 많이 했다.

              

결혼 42년 차지만 늘 일을 했던 탓에 매일 하는 식사에 그리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손님을 초대할 일이 있을 때만 여러 가지를 차렸다.하지만 지난 일 년은 예비 며느리가 덕분에 음식에 정성을 쏟았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먹고 싶다는 음식을 만들려고 애썼다. 지인들은 뭘 그렇게 하냐며, 벌써 며느리살이를 하냐고 말했지만, 이왕 음식을 만드는데 먹고 싶은 것 해주고 싶었다.


 

예비 며느리의 생일 상

                                         



추수감사절, 가게가 바쁘다며 칠면조를 굽지 않았다. 고백건대 난 오븐에 뭘 굽는 것을 잘 못한다. 쿠키를 구워본 기억은 전무하다. 혹 칠면조를 굽는다 했다가 맛도 없고 퍽퍽하면 얼마나 난감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이미 조리된 냉동 킹크랩을 한 박스 사다 해동을 해 다시 쪘다. 아이들은 그것조차, 간이 딱 맞는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냥 찜통에 한번 쪘을 뿐인데.


연말이 되며 가게는 점점 더 바빠졌지만, 남편은 성탄절 저녁을 근사하게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들에게 예비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물었다. ‘갈비찜’이란다. 아~ 그래? 그건 할 수 있지.' 미리 장을 보고, 알고 있는 재료 외에 뭘 더 넣으면 깊은 맛이 날까 싶어 유튜브를 찾아서 보며 준비했다. 성탄절 저녁의 메인 디쉬인 갈비찜은 제법 근사하게 나왔다. 고기도 보들보들. 예비 며느리가 고기를 뜯는 모습도 예뻤다. ‘이건 꼭 가르쳐 주세요’ 배우겠다는 마음도 예뻤다.


김장도 마찬가지로 그 바쁜 연말, 배추와 무 한 박스로 김장을 담갔다. 거의 십여 년만이 었다. 사다 먹거나 성당의 어르신이 해 주시는 김장을 거의 해마다 얻어먹었다.  이번엔 남편이 배추 손질해 저리고 씻는 일까지 했고, 난 김치 속을 준비해서 버무리는 일을 아들과 예비 며느리 앞에서 시연을 했다. 다행히 김치와 깍두기, 백김치의 맛이 꽤 괜찮다.



어느 날, 전복죽과 랍스터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을 차리며, 준비하는 마음과 손길은 대접할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인 것 같다. 이 음식을 좋아할까? 간은 맞을 까? 이게 입맛에 맞을 까? 양은 넉넉할까 등등 예비 며느리가 우리 집 음식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음식의 감과 맛을 좋아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싶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아 음식을 준비할 일도 많이 줄었지만, 늘 만나서 함께 먹던 때가 그립다. 무남독녀로 혼자 자라서인지, 어렸을 땐 친구를 좋아했다. 그때, 함께 살고 계셨던 외할머니는 방과 후 친구들이 오면 넉넉한 밥상을 차려 주시곤 했다. 


결혼을 하고 미국에 와서 어렵던 유학생 시절에도 곧잘 모였다. ‘포트락’이라고 하는 각자 집에서 음식 한 접시 씩 해서 들고 오면 그럴듯한 뷔페상이 차려졌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이어지는 가벼운 대화에서도 소소한 행복은 묻어 날 수 있다.  


퇴직하기 전, 가끔 병원 동료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었다. 설명을 곁들인 한국 음식을 소개하며 작은 자긍심을 키우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성당 가족이 주 손님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 단품 요리도 상관없고, 급조된 번개모임으로 냉동실 속의 음식을 꺼내 데워서 먹는 일도 상관없었다. 흉이 되지 않는 모임은 편안했고 즐거웠다. 또는 특별한 이유로 모여야 할 때는 진심으로 대접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한 해, 우리 가족이 될 예비 며느리와 아들, 부부가 만나는 작은 만남도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나의 작은 수고로  여러 사람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사람 사는 일상의 모습 아닐까. 자주 만나서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시간, 다시 돌아  올 수나 있을까. 따뜻한 마음을 붙잡고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설날 만든 모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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