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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y 25. 2022

내가 아끼는 펜들

펜으로 글을 쓰는 맛

        

 “JI EUN”. 이름이 새겨진 유명 브랜드의 펜을 받았을 때, 가슴 깊은 곳의 감동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 펜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보내 준 친구는 편하게 쓰라고 했지만 난 도저히 아까워 쓸 수가 없다. 선물을 받은 날 짧은 메모를 한번 해 보고는 바로 손지갑의 지퍼가 달린 안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내 보물 몇 호쯤일까?  한 3호쯤으로 해 둔다. (비밀의 1,2호는 상상에 맡긴다.)

펜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혹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아주 가끔 꺼내서 잘 있는지 확인해 보기는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만년필 두 개를 선물 받았다. 빨강과 검정 두 가지 색에 리필하는 잉크도 한 보따리 같이 왔다.

예비 사돈. 예비 며느리의 부모님이며 우리들의 오랜 친구. 아직 ‘사돈’이라는 말이 쑥스럽고, 아이들이 혼인서약을 한 것도 아니어서 조심스러워 부르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곧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책을 냈다는 것을 아는 두 분이 예비 며느리 편에 보내온 선물.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펜의 촉감이 좋고 굵기가 적당해 요즈음 가장 애용하는 펜이 되었다. 아까워서 못쓰는 펜을 대신해주는 참 편한 도구이기도 하다. 일기는 쓰지 않지만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때마다 이 만년필을 애용한다. 필기 감이 그 옛날 잉크를 쭉 짜서 넣던 파커 만년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촉이 아주 부드러워 편하게 쓰인다.

중학교 1학년, 모나미 볼펜에서 파커 만년필로 전환하며 잉크병을 들고 다니다가 흰 교복에 쏟아 삶아도 지지 않는, 주머니가 퍼렇게 변한 교복을 입고 다녔던 기억 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그 만년필로 영어의 필기체를 쓰며 이렇게 꼬불 꼬불 쓰는 글씨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었는데 이젠 그 말을 필수 언어로 쓰며 살고 있으니…



        


또 하나, 작년 책을 출판하며 많은 격려를 해 주었던 고등학교 동창들. 길에서 만나면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나쳤을 반세기 전의 얼굴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동창회를 통해서 받았던 선물. '강릉여자고등학교'라고 쓰여있는 연필과 볼펜. 

강릉에 머무르던 시간에는 모교 교정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동창회관을 자주 드나들며 새록새록 옛시 간들을 추억했다. 사춘기를 지내며  성장했고, 글을 쓰는 꿈을 꾸게 해 주었던 교정. 그때의 문예반 활동은 이렇게 할머니가 되어서도 쓰이는 곳이 있게 되었다. 

그 아름답고도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을 잘 알기에 할머니가 되어서 만나는 교정은 좋은 추억들로 이어졌다. 교정에서 만났던 까마득한 후배들은 신선하고 상큼하고 발랄했다. 나도 그런 상큼함의 시간들이 있었겠지 싶어서 그 옛날의 깔깔거리던 웃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계절이 지나며 목련 꽃이 뚝뚝 떨어지던 교정의 벤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아름드리의 벚나무는 그대로인데, 건물과 운동장은 그리도 작아 보이는지.  그 안에서 자랐던 꿈들로 오늘의 내가 있고, 이 아끼고 소중한 것들이 오늘도 날 쓰게 만든다.



        


소소한 글이 라고 해도 나의 이야기가 있고 내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어서 좋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룰 수 있고 작은 것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 열고 들어가 보면 다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고 남겨 둘 사람들도 그만큼 많을 까?  어느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작가가 독자보다 많은 요즈음’이라고. 그 문장을 읽으며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기도 했었고, 이런 글쓰기가 누구에게는 공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를 안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글의 순기능을 나는 믿고 싶다.

마음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삶의 이야기들로 나의 글쓰기를 계속 이어갈까 한다. 참 소중하고 아끼는 작은 것들을 다시 한번 만져 보고 꺼내 보며, 나는 오늘도 쓴다. 아직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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