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조각들
베이커리 사업으로 동네에서는 꽤나 잘나가던 사장님이었던 엄마는 중, 고등학교 시절 남부럽지 않게 나를 키워주셨다. 대기업을 다니던 아빠도 월급이 꽤나 많으셨겠지만 한창 가게가 잘나가던 때의 엄마는 대기업 아빠 월급을 한참 뛰어넘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하여 월급이라는 것을 받으며 한창 신나던 어느날, 엄마가 베이커리 사업을 하다가 만난 사람으로 인해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대역죄인처럼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하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땐 엄마가 안쓰럽기 보다는 원망스러웠다. 내 통장에는 내가 처음 취업하여 번 돈들이 어느정도 모여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줄 생각도 못했다.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화만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엄마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는 며칠동안 나는 엄마를 잃을까 두려워졌다. 그때 난 어떤 모습의 엄마여도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걸 알았다. 답이 없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전화를 계속 걸어댔다. 며칠 후 잘 있다는 엄마의 답장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겠다'고.
지금껏 수십년을 염치도 없이 나는 받기만 해왔고, 그것을 심지어 당연하다 여겨왔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당연한' 사람이 되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통장에 모아둔 얼마되지 않던 돈을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에게는 딸의 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벌을 받는 기분이었을지 안다. 하지만 그렇게 엄마와 나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 든든한 울타리였던 부모님이 어느 순간 나보다 작아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습이 싫어서 괜히 짜증을 내보지만 이제 내가 부모님께 울타리가 되어야함을 깨닫는 날이 온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엄마 음식에 쌍따봉을 날리고, 아빠의 손에 무거운 짐을 내어주며 부모님 앞에서는 최대한 오래 오래 철부지 딸노릇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