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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쌀, 밥, 밥심

by 봄비

쌀은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이 되었을까? 부여 송곡리 유적에서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것을 볼 때 삼국시대 후기 한반도 남부 지역 사람들의 먹거리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지만 쌀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주식이 되었다. 쌀은 다른 잡곡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고 맛이 좋다 하지만 벼농사는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재배 특성상 관개시설이 있어야만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이 주식으로 먹기엔 부족했다. 적은 노동력을 투입해 수확할 수 있는 잡곡류에 비해 쌀은 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우리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보리밥이나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작물이나 나물죽 등으로 끼니를 때우셨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 전만 해도 귀했던 쌀밥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어떤 이는 쌀을 생산하는 데 88번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한자 쌀 ‘미’(米) 자를 ‘八, 八’로 파자(破字) 하여 노동집약적이며 잔손질이 많이 가는 벼농사의 특성을 표현한 글자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트랙터나 콤바인이 없던 시절에는 더욱이나 그랬을 것이다.

쌀값 인하로 농부들의 근심이 크다. 산지 쌀값이 지난해 10월 한 가마당 21만 7352원에 거래된 이후 10개월 연속 하락해서 17만 7740원에 이르기도 했다. 쌀 생산에 드는 비용이 점점 오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농민들의 한 가마 기대값인 20만 원도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통상 7-9월은 재고 감소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올해는 재고가 많고 쌀 소비가 많이 줄어 가격이 하락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쌀 소비보다 육류 소비가 더 많다. 밥심이 아니라 육심으로 사는 것 같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돼지·소·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이 1인당 60㎏을 넘었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으로, 2년 연속 쌀 소비량보다 육류 소비량이 많다. 1970년대 1인당 쌀 소비량이 136kg이었다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쌀값 인하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쌀값 인하의 원인은 쌀 소비가 줄기 때문이다.

쌀 소비가 주는 원인은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을 줄이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중장년층 또한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 섭취가 더 필요하다는 의사들과 건강 관련 전문가들의 권유에 따라 밥의 양을 줄이고 고단백질의 육류를 많이 먹기 때문이다. 육류의 소비는 늘고 쌀 소비량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임이나 회식, 외식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고기 위주의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쌀 소비보다는 육류 소비를 촉진하는 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또한 간편식 위주의 식사를 선호하는 것도 쌀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 한 것은 디저트 카페나 베이커리 카페가 늘어나면서 수입에 의존하는 밀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어 20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밥보다는 빵과 디저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으니 국내산 쌀로 만든 빵과 디저트 개발에 힘쓰는 것도 쌀 소비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쌀값 인하의 원인은 쌀 수입량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쌀 소비는 점점 주는데도 쌀 수입량은 여전하여 남는 쌀이 많다. 매년 한국에 수입되는 쌀의 양은 40만 8700톤이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 370만 2000톤(2023년 기준)의 10%를 넘는다. 수입쌀은 우리나라에 쌀이 남는 주된 원인이다. 수입쌀의 대부분은 주정용(술)이나 식품가공에 쓰이는데 결국 대기업 식품회사의 수익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부 가공용 즉석밥의 원료인 쌀이 국내산에서 미국산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하니 놀랄 만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수입쌀의 용도를 가축 사료용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한국농정신문 참조)

애초 쌀 한 가마의 20만 원 보장 약속은 야당이 추진하던 양곡관리법의 반대 명분으로 정부가 내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20만 톤의 쌀 격리 등의 대책을 내세웠으나 쌀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근원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일부 농부들은 정부의 이 같은 대응에 항의해 논을 갈아엎기도 했다고 한다.

농민들은 고령화되어가고, 쌀값 생산비는 늘고, 쌀값은 하락하고 있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양곡관리법 조속 개정 등 쌀값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러다 우리나라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가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다.

농협도 아침밥 챙겨먹기 운동을 벌이며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미 쌀밥의 맛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밥심을 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수입쌀의 축소와 규제, 국내산 쌀로 만든 빵이나 간식의 확대 등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노력으로 농민들의 한숨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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