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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Jun 19. 2022

[독후감] 일본 전국시대 130년 지정학(2022)

코스믹출판 저, 전경아 옮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한자를 공부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한자를 계속 공부했고, 이 덕분인지 일본어에 관심을 가졌다. 수능을 본 뒤에, 고등학교 일본어 선생님으로부터 따로 일본어 과외까지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히라가나를 처음 배울 때에는 한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생긴 문자에 흥미를 가졌고, 같은 한자를 다르게 읽는 일본어가 신기해서 계속 공부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일본어와 일본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일본어는 계속 공부했고, 한자를 알았기에 입대 직전에는 일본어 원서를 80% 이상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군대에서도 일본어 공부는 계속되었고, 여유가 많았던 군생활 중에는 짧은 일본어 원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 과정이 그저 재미있었고, 일본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제대 후 복학한 뒤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과의 전공수업을 들었다. '일본의 무사사회,' 중세 일본 전국시대를 망라하는 역사 수업이었다. 메이지 유신까지 일본은 무사 계급이 지배하던 사회였고, 근대화 이후에도 무사 계급의 문화는 일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계대전 당시의 가미카제나 반자이돌격이 그러하고, 할복은 현대까지 발생하여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에 대한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갔을 때, 일본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가마쿠라 막부부터 에도 막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무사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복학하여 들은 그 수업은 내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켜주었다. 


 독서통신연수 목록을 받았을 때, 수백 권이나 되는 책의 목록을 훑으면서 이 책은 단번에 내 간택을 받았다. 학부 졸업 이후에는 한동안 일본에 대해 소원한 상태였는데, 이 책은 마치 죽어가는 불씨를 살리는 듯했다. '지정학'이라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런 류의 역사는 지도와 함께 살폈을 때 더 적절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지정학에 상당히 충실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도를 펼쳐 놓고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나 강과 같은 지형들이 역사의 여러 사건들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상당히 세부적으로 살피고 있다. 전국시대에 큰 전투가 강 주변에서 발생한 이유는 당시의 강가는 지금처럼 둑 같은 시설이 만들어지지 않아 넓은 평야가 펼쳐진 경우가 많았고, 넓은 평야에서 대규모 군대를 배치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축조된 성에 대한 분석도 내 관심을 끌었는데, 산을 천연요새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성이나, 주변 지역과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평야에 지어진 평성 등의 종류부터,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나 해자 등 성의 구성까지, 성에 대해 상세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현대까지 남아있는 일본의 성은 주로 관광지로 꾸며져 있고, 나도 여러 성들을 방문하면서 그 웅장함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이 더 와 닿으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자에게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전국시대에는 수많은 가문과 수많은 무사들이 등장한다. 책에도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이름에 사용하는 글자가 모두 비슷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책에서 설명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지정학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무사들 간의 친인척 관계인데, 성을 함께 명시하지 않으면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인물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미흡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의 목표는 지정학으로 전국시대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므로, 목표에는 충실하고 있었다. 다만 전국시대에 대해 조금 더 종합적인 이해를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책을 읽은 뒤에,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곤 한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중세 일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 만하겠으나, 초심자가 읽기에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기보다 전국시대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지정학이라는 도구로 전국시대를 분석하는 이 책의 시도는 내게 새롭게 다가왔고, 매력적으로 느껴졌기에 전국시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물색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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