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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Jun 19. 2022

[전시회 후기] 구스타프 클림트 (220618)

빛의 시어터 서울, ~2023. 3. 5. 

Gustav Klimt, Gold in Motion


 6월은 한가한 달이다. 우리 팀은 통계를 만드는데, 상반기에 바쁘게 작업한 것이 6월 초에 일단락되고, 6월 말까지는 사무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루즈해진다. 팀원들은 그간 쓰지 못했던 휴가를 쓰면서, 그 날도 팀에는 절반 정도만 남아있었다.

 과장님이 사무실에 남아있는 조사역들을 모아서, 두 명에게는 영화 티켓을, 나에게는 전시회 입장권을 주셨다. 과장님의 자택에 그런 티켓들이 종종 들어오는데, 마침 사무실에 3명 밖에 없었고 그 중 한 명이 전시회를 다닌다는 점을 기억하여 좋은 기회라 생각하셨나보다. 난 영화관에 가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영화관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만 전시회 티켓을 주신 과장님의 사려 깊은 결정에 감동을 금치 못했다.


 '빛의 시어터'. 나는 경로의존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 한 번 가서 마음에 들면 새로운 장소에 도전하는 대신 익숙한 곳을 다시 방문한다. 전시회도 마찬가지로 익숙한 맛을 잊지 못하고 매번 가던 곳만 가려고 한다. 스스로 취미의 범위를 크게 제한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으나 뭐 어때, 좋아서 하는 건데. 과장님이 주신 티켓은 내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애초에 올해 5월 하순에 오픈한 전시관이라 그 전에 가볼 여지도 없긴 했다. 그래도 전시회를 가면 이촌-이태원-동대문역사문화공원 등 다니던 곳만 가던 내가 광나루라는 미지의 지역에 가는 것은 모험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했다.

워커힐 호텔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본 한강. 하늘이 맑았으면 더 예뻤겠지만, 그랬으면 훨씬 더웠겠지.

 광나루, 워커힐. 잘 모르지만 어디선가 부촌의 향기가 느껴지는듯한 언덕을 올라가니, 부촌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워커힐 호텔이 등장했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보이는 한강의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을, 장마 직전의 꿀꿀한 하늘이 상쇄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도심 한복판에서 고층 빌딩들만 보다가, 서울이긴 하지만 트인 경관을 보니 사람들이 기분전환삼아 교외로 나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호텔은 아직 조식을 제공하는 시간이었는지 투숙객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내 목적지는 호텔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전시관이었는데, 엘레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아서 내려가는 계단을 물색하다가 건물 안에서는 엘레베이터가 아니면 비상구 계단 밖에 발견하지 못하여 결국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꼭 입장하는 곳처럼 생긴 주제에, 그저 꾸며진 벽(포토존)이었다. 입구는 왼쪽의 하얀 공간에 있다.

 엘레베이터를 내리니 바로 앞에 '빛의 시어터(Théâtre des Lumières)'가 보였다. 그림이 걸려있는 평범한 전시회를 다니다가, '시어터', '몰입형 예술 전시'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왔더니,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 들어서게 되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정말 영화관, 내지는 공연장처럼 구성된 공간의,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에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전시 주제에 충실하여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을 재구성한 영상을 30분 가량 상영하는데, 공간이 어느 위치에서든 모든 벽을 바라볼 수 없도록 되어있어서 첫 10분 정도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개관 직후라 첫 상영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려지는 부분은 포기하며 2층 난간에 자리 잡았다. 

입장하자마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긴 영상에서 기승전결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입장하자마자 '몰입형 예술 전시'라는 표현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고, 공간 자체가 영상과 맞아떨어지며 나는 시각, 청각적 자극으로 가득한 공간에 집어삼켜지는 듯했다. 여러 감정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아무 빛도 없는 어두운 공간은 웬만하면 무서워하지 않는데, 비틀어진 형상을 그린 그림들과 함께 공포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음악이 웅장하게 나오니, 동영상을 찍던 팔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휴대폰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동영상을 포기하고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전시회를 가면 나는 철저히 관람객의 입장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작품을 천천히 보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공간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실내가 추울까봐 준비해 온 겉옷을 걸치니 마음도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2층에서 한참을 보다가, 바닥에도 영상이 비춰지는 것을 보고 1층으로 내려왔더니 또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프로젝터는 사람이 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바닥과 다를 것 없이 공평하게 빛을 쏘고 있었다. 나도 그 공간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클림트의 영상(30분)을 시작으로 4개의 영상이 돌아가면서 상영되는데, 마지막 영상이 끝날 즈음에 나오는 스포트라이트가 하필 내가 서있던 곳을 비춰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시어터 내부 곳곳에 작은 방들이 있다. 여기는 아예 다른 영상을 틀어주는 곳이었다. 놓치지 않도록 하자.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체크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호텔 밖에 모여있었다. 자신의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 유유히 언덕길을 내려가며 시어터에서 느낀 새롭고 강렬한 감정을 곱씹다, 다시 펼쳐진 한강을 보니 현실로 돌아왔음이 실감났다. 몰입형 예술 전시, 예술 체험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졌다. 이를 가능케 한 과장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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