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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Apr 09. 2022

[전시회 후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22. 4. 17.

 오랜만의 전시회. 요즘 주말마다 날씨가 워낙 좋다 보니 안하던 외출을 하게 된다. 서울 한복판 거주라는 좋은 여건을 십분 활용해야겠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도 있어서, 오늘도 광합성을 겸하여 전시회 계획을 세웠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다 광화문까지 갔는데, 세종문화회관에 ‘러시아 아방가르드’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어서 흥미를 가졌다. 시국을 보아하니 앞으로 러시아와 관련된 것은 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고, 타이틀에 적혀있는 ‘칸딘스키’라는 작가의 이름은 미술사를 공부했다면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유화가 맛있어요



 가기 전에 찾아봤던 어떤 후기에서는 유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며 만족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유화든 수채든 묵이든 표현수단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유화를 언급하는 후기를 읽고 간 덕인지 나도 유화가 갖는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명을 잘 받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붓칠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려졌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선을 넘지 마라는 문구가 괜히 웃겼다. 미술관에서만 지켜야하는 것이 아닌, 교훈이다 교훈.


 시작은 인상주의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는 작품들이었다. 내가 서양화 전시회를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습득해서 다행히 머리에 남아있는 지식에 비추어보았을 때, 인상주의라고 판단했다.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이미지이기도 하고. 여하튼 인상주의 작품들을 볼 때면 경계선이 모호하면서도 표현 대상이 무엇인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고, 특히 색의 활용이 대단함을 많이 느낀다. 내가 볼 때는 사람의 피부에서 파란색이나 초록색은 전혀 발견할 수 없는데, 그림을 통해 혈관 같은 것들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되고, 밤하늘은 그저 검정일 뿐이지만 그 속에 갈색의 나뭇가지가 존재함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예술을 통해 내가 지금껏 포착하지 못했던 요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인상주의 그림들은 붓질의 흔적이 특히 잘 보여서 그런 부분에 집중하곤 하는데, 거리의 모습을 그린 어떤 습작에서 건물에 달린 창문을 단 한 번의 스트로크로 표현한 것이 우스우면서도 놀라웠다. 나 같으면 창틀부터 유리까지 보이는 대로, 구체적으로 그리려고 애썼을텐데. 과감한 스트로크 한 번으로 의도한 것을 표현할 수도 있다니! 예술가의 과감함과 그가 대상을 보는 시선이 참 매력적이라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번 전시회에서 찍은 유일한 작품 사진.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러시아의 추상화가를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칸딘스키겠지만, 이번 전시에 칸딘스키의 작품이 많진 않았다. 여러 구성주의 그림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순수 추상화들이 기세와 같은 드러나는 특징을 지니지 않고 있다면 크게 주목하지 않아서, 빠르게 넘어갔다. 칸딘스키나 입체파는 좀 낫지만, 소위 말하는 ‘차가운 추상’은 오늘날에 더 이상 상업적 디자인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그로부터 정말 아무것도 감상할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 자신만의 우주를 갖고 있다. 나 또한 나의 관점, 철학,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시각으로 보는 세계는 고유한 방법으로 재해석되어 나에게 내재하고 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내 세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들의 세계가 소중할 테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내 관점을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나의 철학이 이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든 글이든 예술이든,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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