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나의 사춘기>

by 도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나는 비 맞는 걸 정말 싫어한다. 우리 학교는 사물함이 복도에 있다. 종례가 끝나고 복도로 가서 사물함 문을 여는데, 운 좋게도 우산이 있었다. 검정 우산. 며칠 전 비가 왔을 때 가져왔다가 집에 갈 때는 비가 오지 않아 놓고 갔던 게 기억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져가기 귀찮았던 거지만, 귀찮음이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우산을 쓰고 터덜터덜 정문을 통과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기분도 다운돼서 걸음에 속도가 나질 않았다. 원래도 느린 걸음이 더 느려졌다. 거북이랑 느리게 걷기 시합을 해도 막상막하일 듯할 정도로 정말 느렸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를 쫓아오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가볍고 산뜻한 발걸음이었지만 마땅히 표현할 의태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발소리는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 무서웠다. 뉴스에서 봤던 살인 사건, 성폭행 사건 등이 떠올랐다. 발소리가 나와 가까워질수록 우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완전히 걸음을 멈췄을 때 내 우산 속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정말 머리가 하얘졌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말 그대로 뇌 정지 상태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한동안 벙 쪄서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의 이 사람도 이제껏 나와 같이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하다. 이 사람 뭐지?

아주 약간의 용기가 생겼다. 고개를 숙여 그 사람의 손을 확인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라 확인할 수 없었다. 위로 올려다볼 만큼의 깡은 없었다. 내가 앞에서 말한 용기는 코딱지만 한 작은 용기다. 나름 극한 상황이었기에 저 정도의 용기도 나에게는 한 줄기의 희망 같았다.


뜻밖에도 그 사람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건 실내화 가방이었다. 그것도 정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정확히 누군지 모르겠어서 용기를 내서 책가방을 확인하니 그 친구였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니, 그 친구인 걸 확인하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좁은 우산 속에서 서로 맞닿은 어깨가,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한 내 심장 소리가, 우산 속 이상한 기류가. 모든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나는 촉이 바짝 서서 완전 긴장한 상태였다. 온몸의 촉감이 살아난 듯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다시 걷고 있었다.

‘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함께 걸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기 시작했을 때쯤 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비 올 줄 알았어?”


그냥 말없이 갈 줄 알았는데. 아니 애초에 대화를 생각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근데 갑자기 말을 걸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니… 어… 그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비가 와서…”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그 후로도 그 친구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우리가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가 계속 나를 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도둑고양이 마냥 힐끔힐끔 훔쳐본 게 다다. 너무 부끄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마주 할 용기가 없었다.


얼굴은 못 봤어도 그 친구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고, 사소한 배려를 봤다. 내가 든 우산 높이에 키를 맞추려 굽힌 허리, 비 맞은 어깨, 좁은 보폭, 어색함을 풀기 위한 대화 등. 사실 그 친구도 많이 어색했을 거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같이 장난치고 그런 적은 몇 번 있어도 둘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내가 저렇게 어색해했는데 얼마나 당황했을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게 정말 크게 다가왔다.


우리 집에 거의 다 와서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비가 많이 오니까 어느 쪽으로 가는지 물어보고 데려다줘야 하나? 그건 부담스러운가? 아니면 나는 코앞이니까 우산을 빌려주고 뛰어가야 하나? 이럴 땐 어떻게 하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어느 쪽으로 가?”


나는 우리 집 쪽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대답을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바보같이 버벅거렸을 거다.


“나는 학원 가야 해서 저쪽으로 가. 빠이~ 내일 봐!”


내가 뭐라고 물어볼 틈도 없이 가버렸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웃으며 뛰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날은 갑자기 비가 왔다. 우연히 우산이 있었고, 우리는 함께 우산을 썼다.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