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경력은 개나 줘버려
미국 생활도 만 3년을 며칠 앞두고 있다.
그 동안 간간히 파트타임 처럼 하고 있었던 번역일이 새해 들어 뚝 끊기면서 여유시간이 늘어났다. 평일의 대부분은 항상 번역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오전에 여유롭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물론 이런 시간이 길지는 않고, 그저 햇살 잘 드는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목적없는 네비게이팅을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아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일과가 몇주간 이어졌다.
돈도 돈 이지만, 의미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졌다. 뭐라도 배워볼까 이것저것 자격증 같은 걸 검색했다. pet technician, phamcist techincian 검색하고 이런 과정들을 개설해놓은 cc 에 자료 요청해서 담당 카운슬러와 상담도 해보고.
그러나 뭔가 다 나와 맞지 않아보였다. 정확히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시도해볼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마침 친구가 아는 사람이 서버로 월 오천불을 번다고 서버일을 열심히 찾길래, 나도 혹해서 구인광고를 뒤져보았다. (그러나 나는 서빙을 할만큼의 스피킹 실력이... 또륵)
그러다가 native speaker 가 자격요건에 없는, 오피스 잡을 발견. 특이하게 영어독해를 잘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딱이라고 생각하며 예전에 써둔 영어 레쥬메를 업데이트 했다.
메일을 보낸 뒷날 연락이 왔다!
며칠전 인터뷰날.
제일 안쪽에 대표 방이 있는 작은 한인 회계사 사무실이었다. 대표와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국에서 경력이 많긴 하지만 회계 쪽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고 미국에서 경력은 1도 없다고 -이력서 봐서 다 알테지만- 덧붙였더니 대표가 이렇게 말해줬다. 이력만 봐도 열심히 사신걸 알겠다고, 무슨 일이라도 잘 해내실 분 같다고.
오롯이 가정주부로만 살았던 미국에서의 시간이 뭐랄까, 시간이나 몸은 여유로웠지만 한편으로는 15년여간의 경력, 지식은 다 쓸모없는 것이구나 싶어서 헛헛하게 느껴졌는데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래. 한국에서는 열심히, 치열하게, 바쁘게 살았지.
말 잘 안통하는 다른 나라라고 지레 여기서는 나같은 사람은 써주지도 않을거라고 시도도 안했는데, 나이 먹은 만큼 겁도 많아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