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매우 안 좋은 말을 했다.
마치 시한부 선고처럼,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정도 후 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듯이...(실제로 논문에서는 5년 생존율이 50% 정도로 나온다.)
주치의 선생님과 건강검진을 위해서 내원한 병원의 선생님, 두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의 뉘앙스가 비슷했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죽음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꿈꾸던 희망찬 미래는 없어지고, 오히려 불투명한 상황에서 맞서게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
남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일은 계속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수없이 많은 물음표들이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 슬퍼하는 사람은 있을까? 혹시 있더라도 그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나를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겉모습은 밝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냈지만, 사실 나의 내면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애써 웃음 지으며 괜찮은 척을 하여도,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도 속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 백번씩 나의 마음은 오락가락하며, 이성과 감정 사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은 이성과 감정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들어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책을 보는 취미를 다시 찾으면서 하루에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움을 찾았다.
책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동료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아픈 사람들은 많다. 심지어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잘 살아가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를 안겨준 생존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가? 심지어 숫자로 나타난 생존율 또한 아예 확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잘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기적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무기력했던 나는 행복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라도, 약 잘 먹고, 운동, 식단도 열심히 하고 관리한다면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나는 강박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삶의 의지의 원동력을 찾아야 했다.)
여전히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들을 구별하기 시작했다.(이건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그 답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누가 나에게 이게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결국은 내가 찾아야 한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
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이 문장이 나는 마음에 와닿는다. 내가 그래도 아직 이승에 있다는 거니깐.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뭐든 해 보려고 한다.(행복을 찾으려 열심히 노력 중이다.)
언젠가 내가 죽더라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다 간 좋은 사람으로, 가끔씩 생각나면 슬픔이 아닌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