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다린 시간, 기적을 만든 나

두 번째 삶의 시작

by 명상

네 번째 내원일.

희망을 기대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한다.


지난 검사 결과를 듣고 난 후,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 백번 변화는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

검사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순수히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하였다.


내 몸에 기계장치(ICD)를 넣는 거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ICD(삽입형 제세동기)를 부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에릭센이라는 축구선수도 경기 중 심정지를 겪고, 최종적으로 ICD를 달았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이 선수도 ICD를 달고 호전되었다는 소식이,

나에게는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이제 제법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를 마쳤다.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로 가는 길,

오늘따라 진료실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다.

이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선생님에 인사를 드리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의 표정이 좋아 보인다.

찰나의 순간 이번에는 검사 결과가 좋구나를 느끼면서, 긴장했던 나의 표정이 살짝 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를 듣기 전에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이 X-ray 결과부터 모니터로 보여주신다.

처음 입원했을 당시, 지난번 검사 결과, 그리고 오늘 검사 결과.

심장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번에도 많이 줄어들었었는데, 이번에도 결과가 좋다.

지난번에 처방받은 약물의 최대 함량이 내 몸에서 반응을 잘해준 것이다.


다음은 피검사 수치,

수치는 대체로 양호, 다만 염증수치가 약간 있는 걸로 보아 최근에 감기에 걸렸었는지를 물어보신다.


한여름이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는 나는 최근에 감기로 약간 고생을 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괜찮은 상태였다.

수치도 많이 높은 편은 아니고, 정상보다 살짝 높아서 회복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씀을 해주신다.

피수치도 모두 양호 소견, 이제 남은 건 가장 중요한 심장초음파 검사 결과.


이번에도 첫 입원 당시와 비교를 하면서 초음파검사 화면을 보여주신다.

지난번 좌심실 심박출률 검사 결과는 30%.

순간 긴장에 되면서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이번 검사 결과 심박출률은 40%가 넘었다고 하신다.

일단 제세동기는 삽입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그동안 맘고생 하느라 애썼다고 해주신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자포자기한 마음이었지만,

"제세동기 삽입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라는 이 한마디가,

그토록 기다렸던 이 한마디가, 나에게는 엄청난 위안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선생님께서 약물 함량 늘렸을 때 특별한 부작용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신다.

날마다 혈압체크는 하고 있는지,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사실 약물 함량 증가로, 저혈압 증상이 때때로 발생하긴 하였다.

약물 적응기라고 생각하고 버텼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극심한 피로감과 전체적으로 몸에 힘이 없는

느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주지 않았으니, 제세동기를 안 달수 있으면 이 정도는 나에게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선생님께서는 혈압체크를 꾸준히 하고, 평소보다 저혈압증상이 심하게 느껴지면,

바로 내원할 것을 강조하며, 나의 네 번째 진료는 끝이 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내 인생의 최대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며,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게도 고비를 한번 넘기니, 이제 완치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희망을 바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아닐지라도.)


다음 검사 결과 또 한 잘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나의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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