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이 사라진 조직

by 명상

회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공동체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각자의 전문성을 나누며 시너지를 내는 것,

그것이 내가 믿어온 회사의 본질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는 팀과 팀 사이에 보이지 않은 벽이 세워져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할 협력의 자리에는 소위 '네 편 내 편'을 나누는 갈라 치기만이 무성하다.


흔히들 소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유연성’을 꼽는다. 복잡한 절차를 건너뛰는 신속한 의사결정, 직급의 권위를 허문 자유로운 소통이야말로 대기업이라는 거대 조직은 가질 수 없는 소기업만의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곳에서 그 무기는 녹슬어 사라진 지 오래다. 대기업보다 더 완고한 벽이 세워졌고, 명확한 매뉴얼 대신 상급자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따라 회사 분위기는 맥락 없이 널뛴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모든 질문 사항은 공식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지

유연함이 생명인 작은 조직에서 이 문장은 곧 소통의 사형선고와 같았다.

문턱 없는 대화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경직성만이 감돈다.

소통을 잃어버린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유연함이 사라진 작은 조직은 그저 좁은 우물 안에서 서로를 할퀴고 생채기를 내는 비좁은 전쟁터일 뿐이다.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누군가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고 편을 가른다. 숨 막히는 눈치 싸움과 비생산적인 긴장감만이 감돈다. 본질을 잃어버린 공동체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시간 역시 더 이상 흐르지 못한 채, 고여가고 있다.


결국 나는 이 조직의 무질서에 순응하며 함께 무뎌질 것인지,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 비좁은 문을 나설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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