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김없이 순차적으로 찾아온다.
찬 바람이 잦아들면 매화와 벚꽃이 피고, 초록이 짙어지면 매미가 울기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 안에서 모든 시작과 끝은 예고된 순서대로 흐른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퇴사와 이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계절이다.
겨울이 지난다고 반드시 따뜻한 봄 이직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며,
내가 덥다고 해서 당장 사직서를 던져 시원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매일 아침 가슴속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며 '오늘일까'를 자문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여전히 신중하다.
그것은 단순히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뻔히 예상되는 불투명한 결과를 선택할 만큼 무책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무게를 알기에, 내린 결론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롯이 나의 몫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퇴사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이곳에서 내가 더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둘째, 아직 내가 배우고 흡수해야 할 기술과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셋째, 짜증과 피로가 몰려오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버텨낼 마음의 체력이 남아 있는가?
이 질문들 중 단 하나라도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면, 나는 지금이 떠날 때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기로 했다.
감정에 휩쓸려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순간의 해방감을 주겠지만,
충분히 익지 않은 열매를 성급히 따버린 뒤에 남을 떫은 후회는 감당하기 벅차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를 고용하고 있듯,
나 또한 이 환경을 나의 성장을 위해 고용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다시 책상을 바라본다.
사무실의 적막하게 가라앉은 공기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업무의 타래들도 결국 내 커리어의 근육을 키워줄 트레이닝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이 지루하고 고된 반복이 사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빚어내는 과정임을 믿어보기로 한다.
완벽한 퇴사 타이밍이란 어쩌면 '더 이상 이곳에서 배울 것이 없어 지독하게 지루해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성장의 곡선이 완전히 평탄해져 더는 오를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안녕을 고할 때다.
그때까지 나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나의 가치를 갈고닦으려 한다.
사직서를 품에 안고서 역설적으로 오늘 하루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나만의 '진정한 계절'을 기다리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