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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면사포

바람의 눈

by 이효 시인


감나무에 감이 붉게 물들자 새들이 날아와 부지런히 쪼아댔다. 1년 내내 지켜온 열매가 떨어지는 것이 안쓰러워 우리 부부는 감나무에 하얀 망을 씌웠다. 그러나 면사포를 쓴 감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 새와 나무의 자유를 내가 가두어버린 건 아닐까. 인간의 풍요를 위해서 하늘과 땅의 질서를 막아선 건 아닐까. 바람은 망 사이로 여전히 스며들었지만, 그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감나무와 면사포 / 이효


붉은 상념 하나 떨어졌다

배를 불리는 새 한 마리


감나무에 하얀 망을 씌웠다

신부의 면사포처럼

길게 늘어진 슬픔


그 은빛 결혼식은 행복했을까?


인간의 풍요를 지키려다

하늘과 땅의 오래된 약속을

순간, 가로막았다


면사포 구멍 사이로 바람의 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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