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
책에서 간간히(라기엔 꽤 자주) 편지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어. 문득 떠오른 첫 사람이 역시 너라 이렇게 몇 글자 적어.
사실 떠나는 직전까지도 무서운 생각이 무수했(언어유희랄까. 호호)어. 상해의 밤이 아직도 새롭고 낯선 걸 불안하게 했거든. 보부상족의 운명으로 잔뜩 무거운 가방을 들고 돌아다닐 때보다 행복했던 건 즉흥적으로 쉬어갈 때, 충전을 핑계로 창가에 앉아 아날로그의 행위를 즐길 때였어. 두려워서 취소표를 택했다면, 귀찮아서 숙소 호스트에게 비용을 환불받았더라면, 끊임없이 깨지 못한 알 속에서 누군가 대신 바늘을 찔러 꺼내주길 바랐을 거야. 그렇게 태어난 생명체가 가장 약하게 자란다는 걸 알면서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 내일은 더 괜찮을 지도 몰라.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는데 그만큼 나는 빠르게 흘러가는 기미가 없어서 남의 의견에 행동을 두곤 했어. 역시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근데 뭐가 현실이지. 바삐 달려가는 거? 추돌해서라도 치고 나가는 거? 경험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도 그랬어. 배부른 삶을 살려는구나, 내가.
근데 아리게 행복하다, 오니까. 쉬어야 했구나 싶어.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가뿐해져야 했는데, 너무 빠듯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것 같아. 결국 한 꺼풀 벗고 나왔을 때 느끼는 청량함이 여기에 있어. 이젠 조금 더 믿어줘야 할라나 봐. 자꾸만 숨고 싶었는데,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고 아무도 뭔지 모르는 현실이란 거에서부터 외면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자꾸 어디에 치여 사는 스스로를 부족하고 나약하다고 가둔 나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사실을 토대로 바라보는 나에게 마음이 미어지다 못해 울컥울컥 하지만 이젠 날 사랑할 때도 된 거 같다. 그치?
너가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긍정이 환상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단언한 내가 어리석었어. 끝까지 행복을 향해 달려가… 지 말고 오늘의 좁쌀 같은 행복에 자지러지게 기뻐하자. 보고 싶어.
대구에서, 윤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