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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May 02. 2023

아직은 둘 다 모르겠어서, 둘 다 해봐야겠다

마음을 꾸준히 내밀던 책방에서 별안간 연락이 왔다. 흡사 연인 같은 언어로 시작된 대화는 며칠간 책방을 지켜줄 수 있냐는 물음이었고, 먼 미래라도 바라곤 하는 열망을 생각보다 더 일찍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좋아하는 일의 모순은 하면서도 계속 확인해 보곤 하는 불안과 그럼에도 다른 일은 더 번잡할 것이라는 기분 사이에 기인한다. 

혼자 책방 문을 연 첫날은 몇 시간 동안 종일 긴장 속에 있었다. 걱정을 한다고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서도 혹여나 잊은 건 없는지 매뉴얼을 수십 번씩 확인했다. 아주 잠시지만 뒷자리에 앉아 불확실한 손님들을 맞이한다는 건, 무척 긴장도가 가득한 일이었다. 언제 올지도 모를뿐더러, 누가 올지,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어떻게 대비할지 등등. 차라리 아무도 없이 작업하고 싶다가도,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종잇장 같은 양면이 무수했다.  


첫 손님이 오셨을 땐 괄약근 조절에 실패한 듯한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었다. 이걸 앉아야 해, 아님 다 둘러보실 때까지 기다려야해… 첫 손님을 보낼 땐 졸지에 삑사리까지 나서 혼자 참여하는 웃음 참기 대회를 열어야 했다. 날 맞이할 때의 사장님을 계속 떠올려가며, 불안에서 비롯된 수많은 글을 우두둑 흘려보내며 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이 불확실함에 힘이 부치다가도, 다시 부스터를 달아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책방을 지킨 3일 동안 지인들이 빠짐없이 와주었다. 몰래 오려다 실패한 사람도, 서프라이즈를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도,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도. 장난스럽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긴장하던 어깨에도 완곡함이 생겼다. 이들에겐 계산 따위 집어치우는 비 옹졸한 내가 되고 싶었다.

처음이라 잔뜩 굳은 얼굴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준 손님들이 기억에 남는다. 미소와 친절에 몸 둘 바를 몰랐던 , 좋은 말 몇 마디를 남기고 가신, 수십 분을 열심히 책을 고르셨던, 내게 남겨진 수많은 얼굴들. 그 작은 조각이 뭐라고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고맙다. 초보에게 잘하고 있다는 듯이 보내준 눈과 입이 아직도 생경해서. 아직도 사람에 죽고 살곤 한다.


두렵게 시작해서 통달한 몸짓으로 나온 삼일동안, 뒷켠 작은 골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종종 차를 내렸다가 서가를 정리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것이라도 업이 되면 불안전함에 여러 밤을 골머리 앓겠지만, 끝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행복하다는 사장님의 감정을 이해했다. 세상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안정적이나 매어있는 것과 불안정하나 자유로운 것 사이에서 어느 걸 선택할 것인지,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겠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 수십 번 그런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뭘 더 바라고 있는지 정도는 깨닫는 밤이 오지 않을까. 아직은 둘 다 모르겠어서, 둘 다 해봐야겠다.



일하면서 남긴 메모들 -.

'떠나신 손님. 미소가 정말.. 영화 같았다. 서로 여러 번을 고개 숙이며 이쪽에선 “조심히 가세요!”, 저쪽에선 “다음에 또 올게요! 감사합니다”를. 책방 하면서 좋은 건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거구나. 부럽다. 는 생각을 그분을 보면서 했다.'


'또 그새를 못 참고 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주기적으로 불안해해서 좋은 점보다는 아쉽거나 힘든 점부터 먼저 찾곤 하는데, 그 앤 우선 감사한 점과 더 나아질 점을 고민한다. 멋지고 부러웠다. 이 친구의 이런 좋은 면은 나기부터 그런 걸까, 아님 훈련으로 생겨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야길 들었다. … 뭐든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야지. 되도록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항상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면서 그렇게 의도적으로라도 행복하다고 되뇌어야지. 원체 부정적인 이야기를 더 쉽게 쓰곤 하지만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수렁에 빠지는 내가 있다. 그렇다고 바로 다시 감정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어서, 일부러 행복한 발견들을 떠올리고 그런 글을 써야겠다. 행복도 노력이라. 특히 나에겐 더.'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할 땐 타임랩스를 사용한다. 아무래도 얼굴이 나오는 건 오히려 신경 쓰여서 못하고, 주로 뭔갈 하는 손을 찍는다. 그렇게 쌓여가는 타임랩스는 아무래도 기분이 좋다.'


'책방지기의 행복은 책방 문을 열 때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듯, 밀고 들어가는 행복. 오늘이 딱 그랬다.'


'떼잉. 손님인 줄 알았는데 택배였군.'


'시를 읽으면서 나를 찬찬히 되짚어보다가 어쩌면 삶에 대한 기대와 아름다움을 더 크게 두는 내가 이 일에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의 끓는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서, 그전까진 웬만해서 친절만 굴고 싶으니까. 방금도 집에서 싸 온 천혜향을 떠올리다 책 읽고 계신 손님께 조금 드릴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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