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서 May 01. 2023

덧없이 충실한 청춘이고 싶다

애매한 나이란 게, 참 어렵다. 지금 아니면 늦었단 말을 듣기도 하고 아직 너무 어리단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고. 아얘 어렸을 땐 너도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애매한 청춘 같다. 


나는 스물과 스물 하나까지를 청춘, 그러니까 아직은 좀 몰라도 되고 도전해도 괜찮은 나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근데 이 기준은 남을 봤을 땐 또 하염없이 넓어져서 결국은 그냥 나에 한한 거라고 보면 된다. 밖에선 한없이 넓어지고 관대해지는 마음이 안에선 또 하염없이 쪼그라들고. 그렇다. 사실은 스스로가 나이 듦을 강박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던 건데, 주름이 짙어지고 힘이 옅어지는 감각을 과연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 영화 <수상한 그녀>에 노인에 관한 강의를 하는 성동일에게 한 여대생이 이런 말을 한다. "저는 늙기 전에 죽을 거예요." 그땐 '뭘 저렇게까지...' 했던 마음이 점점 이해 가는 대사로 기운 건 아마 청춘의 정의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내리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늙어감을 영글어감으로 이해하게 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꽤 오래 동경해 오던 누군가의 공간에 가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직 이만한 나이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나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하는 일들을 여럿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 학생이라는, 크게는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의 확신이 멋졌다. 많은 길을 구불구불 걸으며 얻은 자신만의 취향이라던가, 방식이라던가 하는 부분이 상대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영향이 되었다. 사랑하는 방식도, 동경하는 방식도 전부 닮고 싶은 사람인 이 확고함. 듣는 역할을 자진해 오고 가는 수많은 언어와 분위기를 담고 돌아가는 길엔 문득 너무 어려서 아쉬웠다는 말을 적었다. 사실 나이보다도 성숙함을 무기로 가진 인간이 되고 싶었을 것. 하지만 그 성숙은 결국 많이 해보며 체득하는 거라 결국 이 청춘을 제대로 쓰고 있느냐는 물음이 되었다. 잘 써서 잘 영글어갈 나이를 만들고 있을까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가 담고 있는 멋을 엿보다 보니 나이를 짊어져감으로써 얻는 유쾌와 여유가 있었다. 난 아직 그로부터 한참 멀어있는지라, 어쩌면 아직 젊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인풋과 아웃풋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직 얕은 머리의 본인이 내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보였다. 아닌가, 그저 두려움에 관한 핑곈가.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긴 길을 긴 고민으로 이어 붙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건 전혀 새로운 고찰에서 오는 좋은 마음, 다양하게 확립된 일상에서 배운 도전에 관한 확고함. 


누구나 알듯이, 시간의 부족은 절대적이면서도 반면교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곗거리다. 흘려보내는 무수한 조각들의 시간을 누군가 환산해 준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눈덩이를 넘어서 몇 톤 트럭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끄럽지만서도 마주해야 하는 것. 청춘에 나이는 없으나 시간에는 나이차를 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애매한 청춘이라는 단어를 지우기로. 덧없이 충실한 청춘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에 관한 환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