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소비가 불타는 계절이다. 집으로 택배가 오지 않으면 이 추위와 외로움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계절은 오로지 크리스마스만 바라보고, 크리스마스의 남은 여운을 느끼는 것으로 지나간다. 날이 갈수록 겨울이 싫은 이유는 늘어난다. 일단 추우면 소름 끼치는 감각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함께 어는 손발은 더더욱. 한겨울 사람 꽉 찬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생기는 땀은 찝찝하고, 온갖 옷가지로 무거워진 몸을 느끼는 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여름이 더 싫다는 사람과 싸움을 시작할 때 겨울은 추우면 껴입으면 되잖아.라는 이야기가 꼭 나오는데, 그럼 스키 바지랑 수면잠옷 입고 출근해도 되냐고 물으면 내 승리로 끝난다. 겨울은 그만큼 춥고, 시리고, 마음도 같이 냉해져서 고군분투하게 된다.
여름엔 쇼핑 장바구니가 도통 줄어들질 않는데, 심지어는 게 중 반절을 비워버리기도 한다. 문만 열고 나가면 온갖 산책길이 펼쳐져서, 거길 걷느라 다른 물건의 쓸모를 자주 잊어서 그렇다. 딱 이만하면 된다고, 이렇게 텀블러에 얼음물 채우고 온종일 따릉이만 타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여름은 딱 충분치의 행복을 준다. 목이 너덜너덜해진 티 한 장 입고 어디든 떠나는 가벼운 안도. 그러다 보면 장바구니의 남은 반절은 겨울이 대신 사주는 셈이다.
춥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걸 살 수 있는 계절이다. 추우니까 코코아 마실 귀여운 머그를 주문하고(정작 코코아는 마시지도 않는다), 시린 방이 싫어서 감성 가득 미니 난로를 사고, 쌀쌀하니까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카톡을 보낸다. 그 말고도 얼마나 많은가. 외롭다고 스피커를 사지 않나, 계절에도 안 맞는 가을옷을 주문하고, 갑자기 식물을 들여온다. 춥다는 핑계가 모든 걸 손에 쥐게 한다. 추위에 대항할 수 있는 대체물이 방벽처럼 쌓여야 씩씩하게 겨울을 보냈단 생각을 하는 걸까.
서늘한 공기가 몸에서 용솟음칠 때마다 나는 외로워진다. 춥게 살아야 하는 올라프가 반대로 여름을 갈망하는 것처럼, 겨울을 살아야 하는 나도 외로움을 느끼며 반대 계절을 상상한다. 허파로 밀려오는 외로움은 무력을 내놓고, 물건과 친구를 찾아 적정온도를 맞춰야만이 다시 안락한 기분을 마시게 된다. 다만 귀엽고 쓸모없는 물건과 외로움에 찾아 나선 친구는 볕처럼 마음을 오래 달구지 못해서, 또 사고 또 연락해 보는. 그런 겨울을 겪는다.
이젠 이 겨울 소비 행태가 어디까지 진화했는가 하면, 일명 '여름이 그리워...'쇼핑. 제일 사랑하는 계절을 기다리는 장바구니 털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며칠 전엔 '여름의 여름'이라는 문구가 적힌 반지를 주문했고, 여름 햇살이 배경인 노트를 구매 예정 칸으로 옮겼고, 하여간 '여름'만 들어갔다 하면 죄다 내 통장을 유혹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뭐가 그렇게 싫어서 예방하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기다리는지. 아이러니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겨울이 하는 일이다.
다만 내가 사는 계절이 전부 여름이라면 짧은 시간 누린 모든 것이 밋밋해져 버릴까 걱정이다. 여름이 좋다고 떠벌리는 것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고, 안 그래도 까만 살결이 더 까맣게 타들어 가고, 땀으로 젖은 등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퇴근길에 택배를 찾고 전기요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추워으억!!!!!!”하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호들갑 떠는 순간까지도.
이렇게 고백하고 보니, 실은 겨울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꽁꽁 싸매고 열심히 오늘의집과 지인의 카톡 창을 들락거리는 나름 귀여운 겨울.